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보자 하면 개인적으로 가벼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한 편을 꼽으라면 다양한 등장인물들 간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라는 영화이다. 내가 이를 꼽는 이유는 영국 대표 ‘국뽕’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국 총리 역을 맡은 휴 그랜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세계 정세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주변 일상 속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사랑을 찾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찾을 것이라며 “love actually is all around us(사랑은 사실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화 중에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자가 성과를 묻자 미국 대통령에게 먼저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답한다. 순간 낙담하는 영국 각료들의 표정이 스쳐가고 이를 지켜보던 영국 총리가 이렇게 답한다. “관계라는 단어는 많은 죄를 덮죠. 양국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미국은 자국에 필요한 것만 취하려 들고 영국이 원하는 건 무시했어요. 위협하는 자는 친구가 아닙니다.” 그리고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너리, 해리포터도 있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 아니 왼발도 있고요. 이제 영국도 강해질 겁니다. 미국은 대비해야 할 겁니다.” 영국 총리는 이렇게 기자회견을 마무리한다. 현실 속의 현재 영국 모습을 보면 영화는 영화일 뿐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바이든 정부와 첫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있었다.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환영하고 미국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을 명시해 문재인 정부의 접근 방식에 동의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에 한·미가 조율된 하나의 목소리로 북한에 대화의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는 주권회복 차원에서 마땅한 것이었지만 예상치 못해 더더욱 놀라운 성과이다. 미국의 백신 기술 제공으로 우리는 글로벌 백신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 전기배터리 분야 협력 강화는 우리 기업들의 대미 경제 진출 환경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AI, 5G 및 6G, 원전, 기후 및 환경, 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 협력과 파트너십 확대를 통해서는 미래 성장 동력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귀국길 보따리가 풍성하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드물다는 외교 통설처럼 늘 성공으로 포장되는 정상회담 정도로 이번 회담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상호 윈윈(Win-Win)한 정상회담이다. 귀국길에 한 짐 지고 왔다고 모두가 성과일 수는 없다. 성공이라고 단정하기엔 짊어지고 온 짐이 너무 무겁다. 워싱턴을 떠나오는 순간 한·미 양자의 입장에서만 결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성과가 많은 정상회담이니 성공이냐 실패냐 평가하기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더욱 많다. 오히려 그 성과와 자랑에 불편해할 쪽도 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안보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후속 조치와 노력이 절실하다. 한·미 정상이 한마음으로 던진 메시지만으로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간 것이라며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도 기대하기 어렵다. 1년 남은 이번 정부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한·미 동맹으로 상황을 관리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1년 후 아니 어쩌면 한 달 후 지금의 한·미 정상회담 평가가 다르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굳건한 한·미 동맹을 확인하고 포괄적, 호혜적 동맹으로 발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맹이란 단어로 많은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 한·미관계가 모든 분야에서 동맹으로 규정되고 동맹화하는 것이 과연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미래의 건강한 한·미관계와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질문해 본다.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휴 그랜트처럼 영화 한 장면을 찍고 오길 바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촛불의 힘이 만든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대한민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한글과 세종대왕, BTS, <기생충>의 봉준호, <미나리>의 윤여정, 류현진의 왼손과 손흥민의 양발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가장 자랑스러운 촛불시민을 가진 나라입니다”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좀 더 우리가 용기를 갖고 평화를 이루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한반도 평화는 (한·미 동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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