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제와 당산나무

2021.07.13 03:00 입력 2021.07.13 03:02 수정

경남 고성 양산리 느티나무

경남 고성 양산리 느티나무

하늘이 베푸는 만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농경문화 시절,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소원을 하늘에 빌었다.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고, 햇살을 더 따스하게 쬐어달라고 또 빌었다. 사람의 생살여탈권이 온전히 하늘에 달렸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저 높은 하늘까지 사람의 소원이 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릴없이 넋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던 그 순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큰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였다.

사람들은 나무에 다가서서 소원을 빌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람의 마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는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다 담고도 남을 듯한 몸피를 하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나무를 향해 하늘까지 우리의 소원을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나무에게 소원을 전달하는 예를 정성 들여 치렀다. 해마다 빠짐없었다. 이 땅의 당산제는 그렇게 이어졌다.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이른바 영매 노릇을 하는 나무를 사람들은 ‘당산나무’라고 불렀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은 남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올리는 당산제는 사라졌다 해도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당산나무는 여전히 마을의 중심이자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사람살이가 고단할 때마다 나무를 찾아가 옛날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했던 것처럼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리고 소원을 비는 건 여전하다. 세월 지나며 나무에는 사람들의 한 많은 삶이 고스란히 배어들었다.

이 땅의 큰 나무는 우리 삶의 역사다. 일쑤 스쳐지났던 민초의 역사가 모두 나무에 담겨 있다. 권세가 중심의 기록에선 찾아볼 수 없는 사람살이의 역사다. 나무가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지, 나무 안에 담긴, 나무가 바라보고 함께 서러워하고,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전하기 위해 애면글면했던 나무는 소중한 우리의 역사다. 격동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땅의 큰 나무를 한번 더 찾아보아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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