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의 품격

2021.08.18 03:00 입력 2021.08.18 03:01 수정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소인배의 품격

“소인배에게 무슨 품격?” 충분히 들 수 있는 생각이다. 소인배와 품격의 조합은 그만큼 어색하다. 그러면 이러한 조합은 어떠한가? 드라마 제목 ‘악마 판사’, 언제부턴가 자주 듣게 된 ‘기레기 언론’ 같은 표현 말이다.

판사나 언론같이 태생이 ‘착한’ 말에 악마니 기레기니 하는 부정적 표현이 붙음은 그들에게 기대했던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함에 대한 실망, 비판의 결과다. 판사나 언론인뿐 아니라 검사, 지식인 등에게 ‘나쁜’ 말이 붙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의 반증이다.

반면에 태생이 나쁜 말이 긍정의 표현과 한데 어울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공자는 소인배의 품격을 얘기한다. 공자는 ‘사(士)’의 조건을 묻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한 대로 반드시 행하고 행함에 꼬박꼬박 성취가 있으면 비루한 소인배일지라도 사의 말단이 될 수 있다.”(<논어>)

공자 당시 사는 신흥계층으로 지식과 역량을 바탕으로 제후나 대부 같은 귀족 휘하에서 통치의 일익을 담당했다. 공자는 이들 중 도덕 역량을 바탕으로 내정과 외교를 담당할 수 있는 자들을 제일로 쳤고, 가정과 고을에서 도덕적 삶을 일구어가는 이들을 두 번째로 쳤다. 그런 후 소인배를 사의 말단에 두었다.

사는 타고나는 신분이 아니라 지식과 역량에 의해 정해진다. 평민으로 태어났어도 지식과 역량을 갖추면 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식과 역량을 갖추어야 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소인배가 그것이다. 소인배치고 무지하거나 무능력한 이가 어디 있던가? 하여 송대의 대학자 사마광은 소인배와는 공적인 일을 같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지식과 역량을 나름 갖추었기에 공직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자는, 소인배는 지식과 역량이 얕고 좁지만 그나마라도 지녔기에 시정잡배와 다르고, 하여 공자가 그들을 사의 범주에 넣었다고 보았다. 공자는 소인배조차도 최소한의 품격이 있는 사회를 꿈꾸었음이다. 그런데 과연 어느 사회가 더 나을까? 순기능을 해야 하는 판사나 언론 앞에 악마니 쓰레기니 하는 말이 늘 붙어 다니는 사회와 소인배 같은 못난이들 곁에 품격 같은 착한 말이 붙는 사회 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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