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대의 극장전

2021.08.20 03:00 입력 2021.08.20 03:01 수정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넷플릭스 시대의 극장전

냄새나는 영화 오도라마(odorama)를 체험한 적이 있다. 시청각 매체에 후각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궁금해 입장권을 끊었다. 화면에 알람과 함께 숫자가 뜨면 미리 받은 오도라마 카드의 해당 번호를 긁어서 냄새를 맡는 방식이었다. 영화는 싸구려 성애물이었는데 야릇한 대목마다 알람이 울렸고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킁킁거렸다. 여주인공의 향수향을 시작으로 언급하기 민망한 냄새까지 다양한 후각 정보를 소화하느라 극장 안은 어수선했다. 일회적 재미로 그칠 관람 형식이었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오도라마는 대중화에 실패했지만 지배적 대중매체로 진화하기 위한 영화의 부단한 시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는 타 매체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기술을 기반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해 왔다. TV가 도전해 왔을 때, 색을 입히고 소리를 키우고 화면을 넓힌 장쾌한 서사물로 응전했다. 각기 새로운 기술이었고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의 미래였다. 그러나 기술 변화 시점에 영화계는 언제나 보수적으로 반응했다. 익숙한 체제에 안주하고 싶은 관성이 영화계만의 특성은 아니겠지만 안목 부족으로 낙오한 자들이 많았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기성의 제작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긍정적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위험한 도박이라 부담스럽고, 감독으로선 숙련된 예술형식이 생경하면서 경박한 기술에 의해 퇴보할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과거에도 토키(발성영화)가 도입되자 많은 영화인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특히 대사에 덜 의존적인 무성 희극인들은 조악한 소리 때문에 영화의 조형성이 파괴된다며 토키 제작에 냉담했다. 녹음기에 맞춰 움직임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몸개그의 장인 찰리 채플린도 극렬하게 토키에 반대했다. 토키가 첫선을 보인 해가 1927년이고 채플린이 소리의 표현 가능성을 깨닫고 제작한 <독재자>가 1940년도 작품이니 상당히 늦게 뛰어든 셈이다. 채플린은 늦었지만 빠르게 적응해 나간 덕에 발성영화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넓힐 수 있었고, 상업적으로도 큰 이익을 남겼다. <라임 라이트>의 한 장면(사진)에서 분장을 지우고 있는 채플린 뒤의 남자가 무성 희극영화의 슈퍼스타 버스터 키튼이다. 키튼은 슬랩스틱을 영화언어로 확장해 발전시킨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하지만 채플린과 달리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한 채 잊혀진 무성영화 스타들을 대표한다.

한국 영화계는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플랫폼 변화를 위기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극장을 중심으로 불안한 담론이 생산되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영화를 소비할 매체의 다양화로 극장은 이미 사양길에 있으며 혹 존속되더라도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다른 한편에선 대형 화면과 양질의 음향이 담보하는 감상 환경의 장점은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미래가 궁금하면 과거를 돌아보라고 했다. 과거 TV 등장에 영화는 스펙터클로 맞섰다. 조그만 흑백 브라운관이 감당할 수 없는 약점을 공략함으로써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소비자의 니즈를 읽은 것이다. 반면 오도라마처럼 관객의 욕구를 오독한 나머지 해프닝으로 끝난 예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와 근미래의 관객이 극장을 통해 누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극장은 다수가 모여 쾌감을 공유하는 장소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수는 줄겠지만 편의시설이 완비된 놀이공간에 최적화된 장르와 규모의 영화만 제공되리라 본다. 극장의 미래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중저 예산 영화의 진로가 문제다. 저작권을 몽땅 가져가는 넷플릭스의 전횡 앞에 제작사들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의 거래를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저 예산 영화의 수익 창구는 OTT 플랫폼에서 찾아야 한다. 넷플릭스 시대의 관객들은 좋은 영화라면 극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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