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간식’이 쏘아올린 학교급식 난맥상

2021.10.29 03:00 입력 2021.10.29 03:03 수정

2018년 3월15일, 이 지면에 ‘국통에 빠진 딸기라도 먹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철 과일 섭취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차이가 3배 정도 나고, 식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식생활교육 차원에서도 골고루 먹여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행한 사업이고 WHO에서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이라 권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과일 급식은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급식실에서 과일 하나 깎아 주려면 손질 인력이 더 필요하고 인건비와 식재료비가 분리되지 않은 구조에서 여러 조율이 필요하므로 국비 중심의 예산 지원과 인력충원에 대한 제언이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그 전후로 전국의 초등돌봄교실에서는 과일간식이 제공되었다. 쉽게 먹일 수 있는 떡이나 가공 완제품 간식을 제공하다 컵과일 형태로 주 2회 정도 제철 과일이 공급되면서 학생, 학부모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은 과일이 나오면 버려져서 뒤처리에 돌봄교사들의 수고가 더해지기도 했다. 또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제기되어 지금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컵으로 교체된 곳이 많다.

초등돌봄교실 학생에 한해 주던 과일간식을 내년 초등 6학년생부터 시작해 2024년 전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각 시·도교육청에 사업 공고가 뜬 상태다. 하지만 과일간식 사업에 대한 반발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방식은 일과 중에 컵과일 형태로 제공되는 방식과 원물 과일을 급식체계에 연계해 급식시간에 먹이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각 교원단체와 영양교사들,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현장을 무시한 정책이라며 정색을 하고 있다. 교실에서 과일을 먹게 되면 위생관리와 쓰레기 발생의 문제를 교사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이유가 크다. 지금도 교실 곳곳에 굴러다니는 우유 처리에도 골치가 아픈데 여기에 과일까지 보태지면 교실은 난장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급식시간에 제공할 경우 조리인력 업무 가중 문제부터, 과일을 먹으면 배가 불러 밥을 제대로 먹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당도가 높아 아이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까지 나왔다. 게다가 왜 학교가 어려운 농업을 떠받치는 농산물 판매처가 되어야 하느냐는 항의까지 빗발치며 농업계에 대한 힐난도 섞여 있다. 정작 학부모와 농민들은 입장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과일간식’은 그동안 학교급식이 쌓아온 난맥상을 비추는 조명탄일 뿐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면 혼란에 빠진다. 과일만 갖다주고 끝이 아니라 품목마다 처리하는 복잡한 회계처리의 과정이 남고, 이걸 또 누가 맡아서 하느냐가 남는다. 정부가 있어 보이는 제도를 내리꽂는 관행에 질려 하는 면이 크다. 작년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자 각 가정으로 학생가정꾸러미가 전달되었는데, 어떤 학부모는 쌀만 주었다 화를 내고, 생채소를 주면 해먹을 시간도 없는데 이런 걸 주느냐는 민원이 동시다발로 들어와 학교는 대혼란을 겪었다. 게다가 급식 재원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 오히려 재원이 그나마 풍족한 대도시의 학교보다는 농어촌 학교에 과일이 지원되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교육의 틀에서 급식을 다룬 것이 아니라 농업계는 학교를 농산물 판로로, 학교의 구성원들은 급식을 학교 급식실 안의 일로만 대해온 결과가 과일간식 지원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이다.

이렇게 진통을 겪는 과일급식 지원사업의 향배가 어디로 흘러갈까. 하나 분명한 것은 시간과 돈의 문제가 걸려 있는 어려운 가정에서 지원받길 원하는 것이 ‘고기’와 ‘과일’이라는 보건실태조사의 결과를 이번에는 그 누구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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