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요람

2022.02.12 03:00 입력 2022.02.12 03:01 수정

마야 데런, 마녀의 요람, 1943, 13분

마야 데런, 마녀의 요람, 1943, 13분

안무가, 무용가, 영화이론가, 영화제작자, 시인으로서 1940~195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엘레노라 데렌코브스카(1917~1961)는 1943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마야 데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리스어로는 ‘신의 메신저’, 산스크리트어로는 ‘환영’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야는 그의 영화적 이미지를 지배하는 바다, 환상, 마술, 여인 등 그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그는 예술의 여러 속성과 영화의 기술적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실험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다. 기이한 이미지들과 파편화된 흐름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녀의 요람’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공간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당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페기 구겐하임이 운영하던 금세기 미술화랑에서 촬영한 만큼, 그의 작업은 초현실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마녀의 상징’을 이마에 새긴 여성의 시선, 펄떡이는 심장, 양손을 끈으로 감싼 신사(마르셀 뒤샹 분),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식이 의뭉스럽게 움직인다. 초심리학 실험에 사용하는 금속좌대를 일컫는 ‘마녀의 요람’을 제목으로 쓴 작가는 마녀를 가방에 넣어 나무 끝에 매달아 그네를 태우는 방식으로 사용하던 고문도구가 일으킨 감각의 상실, 혼란, 환각의 상태를 작업 안으로 녹여낸다.

비틀린 프레임 안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 맥락 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연출하는 리듬감은 신비로운 분위기와 동시에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극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하얀 끈은 마치 이 세계를 조종하거나 옭아매는 존재처럼 조각난 영상의 호흡을 연결한다. 굳이 언어로 해석할 필요 없이 몸으로 다가오는 감각 안으로 빠져드는 현실 너머의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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