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위험한 항해를 멈춰라

4월15일,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신청 추진을 의결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다른 FTA들과 비교하여 개방 수위와 강도에서 높은 강제력을 가진 조약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자동차·부품·철강 등 수출 주력 분야에는 유리하나 농축수산업에서는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와 재계의 논리는 과거와 똑같다. 농업 부문 피해보다 다른 산업의 이익이 크니 작은 시장 내주고 큰 시장을 얻겠다는 것이다. 생명과 이윤을 같은 무게로 저울질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손익 계산법은 이제 시장에서조차 적합하지 않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지금은 세계화의 결과를 알 수 없었던 1990년대가 아니다. 자유화된 세계시장의 위험성은 지난 30년간 충분히 입증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불량 금융상품을 우량 상품과 뒤섞은 파생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다가 결국 부동산에서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위기로 확산된 사례였다. 경제학자들은 당시 상황을 ‘위험한 유조선’에 빗대 설명했다. 유조선 탱크는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여러 칸에 나누어 원유를 넣게 설계되어 있다. 충돌 사고 등으로 배에 구멍이 생기더라도 그 부분만 유출되게 만든 안전장치인 것이다. 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단 하나의 구멍이 원유를 몽땅 바다로 쏟아붓고 배를 침몰시킬 것이다. 상호 출자와 투자로 복잡하게 뒤얽힌 금융시장은 바로 그 칸막이가 없어진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한 곳이 터지면 순식간에 위험은 전 세계로 확산된다.

CPTPP에서 농어민들이 위험을 지적하는 원산지 누적제도도 그런 것이다. 역내 협정국에서 수입한 재료를 사용하여 가공할 경우, 중간 재료를 모두 최종생산지의 자국산으로 표기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금융 파생상품처럼 식품 파생상품을 만들어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산지 인증을 기관인증이 아닌 기업의 자율인증으로 허용하는 것이나 농식품 검역에서 수출업체가 아니라 수입국 정부에 엄격한 근거로 검역 사유를 입증하도록 하는 규정도 기업의 편리와 자유를 위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칸막이를 낮추는 일이다. ‘역내 시장’이라는 말이 착시를 불러일으키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역(region)이란 땅이 아니라 교역이 중심인 바다의 공간이다. ‘태평양 일대’라는 거대한 공간을 하나의 역내 경제권으로 묶는다는 것은 원료와 상품을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하도록 촉진한다는 뜻이다. 이동성은 에너지 소비와 직결된다. 이동 속도와 거리에 따라 에너지의 투입량도 커진다.

상품의 이동경로는 질병의 이동경로이기도 하다. 코로나19도 자유화된 시장 경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됐다. 기후위기 주범인 탄소배출은 자유무역체제를 통해 세계화된 경제와 밀접히 연관된다.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사용한 전체 화석연료의 절반이 90년대 이후에 사용된 것이다. 같은 시기 가속화된 산림과 농지의 파괴는 감염병의 확산과 직결된다. 롭 월러스는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가축전염병과 인수공통감염병이 대륙 간 투자가 확산된 1990년대부터 더 빈번하게 더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1998년 공장식 축산기업인 스미스필드의 멕시코 농장에서 발발하여 북미를 휩쓴 돼지독감은 ‘나프타 독감’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팬데믹은 ‘WTO 팬데믹’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자유무역협정에 따라오게 될 ISDS조항, ‘투자자 국가 간 분쟁 중재 절차’는 정치적 위험을 초래한다. ISDS는 생태적·경제적·사회적 위험 요소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개입과 민주적 통제력을 무력화하며, 공공의 복리를 투자자의 이익에 종속시킨다. 겉으로는 국가 간의 협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하고 ISDS 절차를 선호하는 것은 초국적 거대자본이다. 식량주권이 자본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단지 농어민만의 문제가 아니며, 고추값 양파값 하락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지구를 위협하는 이 위험한 협정에 맞서 시민사회운동은 농어민과 연대하여 함께 싸울 것을 호소한다. 농어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임기 내 신청’ 방침을 내세우며 정부가 의결한 다음날이, 세월호 참사 8주기였다. 돈벌이를 위해 불법 개조한 노후 선박이, 느슨한 규제와 안전점검으로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싣고 출항하던 그날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고쳤는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다짐해야 하는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