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와 부겐빌레아

2022.04.26 03:00 입력 2022.04.26 03:02 수정

곡절 많은 삶은 예술가의 운명인가. 반 고흐와 베토벤이 그렇고 이중섭과 나혜석이 그렇다. 멕시코의 대표 화가 프리다 칼로. 자화상의 짙은 일자 눈썹에서 기구한 운명과 싸우는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작품 중에 유독 자화상이 많은 걸 보면 사회적 굴레와 자기 삶이 처절한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표현한 자화상은 평온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같이 고통스럽고 때로는 기괴하다. 가시로 살이 찢기고 못이 박힌 가슴팍을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화살을 맞으며 피를 흘리거나 심지어 척추는 부러져 있다. 전부 그녀의 잔인한 운명과 시대 상황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자화상 중에는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있는 자화상’이 있다. 그의 어깨에는 애완동물 원숭이와 고양이가, 머리 장식 위에는 나비가 앉아 있고, 푸크시아와 백일홍 모습의 잠자리 두 마리가 날고 있다. 나비와 잠자리는 부활을 상징한다. 목에는 가시덩굴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중앙에는 벌새 장식을 달았다. 멕시코에서 벌새는 사랑을 회복하는 부적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에 미련이 남은 것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한동안 가시목걸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최근 옥스퍼드대학 고대 역사학자이자 정원가로 알려진 로빈 레인 폭스의 글에 따르면, 정원가들이 이 의문의 가시목걸이가 부겐빌레아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이름 모를 식물학자 덕분에 위대한 화가의 자화상을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니, 예술작품 해석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이다.

남미가 원산지인 부겐빌레아는 키가 약 10m까지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꽃은 빨간색, 분홍색, 주황색 등 화려한 색이 대부분이어서 열정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그런데 화려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안쪽의 작은 꽃을 보호하는 포(苞)이다. 이 포가 색종이처럼 보여 부겐빌레아를 종이꽃(paper flower)이라고도 한다. 화려한 꽃 속에 숨겨져 있는 날카로운 가시는 염증을 일으키는 독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발진과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자화상에서는 꽃과 잎은 없고 가시만 남은 부겐빌레아 목걸이가 그의 몸을 후벼 판다. 화려함과 열정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그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일까. 가혹한 운명과 사회적 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는 이제 다시 작품으로, 영화로, 그리고 뮤지컬로 이 세상에 부활했다. 마치 가시면류관을 쓰고 창에 찔리고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를 오르던 예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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