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해도 봄꽃은 다시 핀다. 제주도에는 지난주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이제 곧 벚나무가 곳곳에 만발할 것이다. 벚꽃잎은 바람이 불면 낱낱이 흩날리어 그 매력을 더한다. 벚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왕벚나무다. 벚나무 가로수 중 대부분이 왕벚나무이고, 벚꽃축제의 대표 선수가 왕벚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유행과는 다르게 정작 우리 선조들은 벚꽃을 찾아 나서거나 특별히 벚꽃 구경을 즐기지 않았다. 벚꽃놀이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정착된 문화이다.

벚꽃놀이가 전통적인 꽃놀이가 아닐지라도, 왕벚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이 자생지이다. 그것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이 바로 엄택기(嚴宅基)이다. 그를 빼고서는 왕벚나무를 이야기할 수 없다. 사실 왕벚나무만이 아니다. 제주도에 자생하는 수천종의 식물이 그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구상나무도 그의 노력 덕분에 학계에 보고되었고, 온주밀감 재배도 그에 의해 시작되었다.

엄택기는 원래 신부였다. 1900년대 초 제주도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식물에 관심이 많던 그는 수시로 한라산을 탐사하고 식물을 채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라산을 답사하던 중, 해발 600m 지점의 관음사 주변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다. 그때가 1908년 봄이었다. 그는 왕벚나무 표본을 장미과의 세계적 권위자인 독일의 쾨네 교수에게 보냈으며, 그 표본을 확인한 쾨네는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최초로 밝혔다.

엄택기는 채집한 수많은 식물 표본과 씨앗을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에 보내 우리 토종 식물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가 제작한 표본은 7000여개로 영국 큐왕립식물원을 비롯해 전 세계 유명 식물원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학명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식물종도 수십종에 이르니, 그의 노력과 업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덕분에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식물분류학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왕벚나무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학자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왕벚나무 자생지가 우리나라이고, 그것을 밝힌 사람은 엄택기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엄택기는 프랑스 출신으로 1898년 25세에 선교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1952년 79세의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50여년을 한국에 살았다. 그의 본명은 에밀 조제프 타케(Emile Joseph Taquet). 그는 지금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편안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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