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권력이다

2022.07.22 03:00 입력 2022.07.22 03:04 수정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달러는 권력이다

7월 들어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이다. 환율은 올라도 걱정이고, 떨어져도 걱정이지만 요즘과 같은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상승)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본다. 기축 통화인 달러 대비 원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국외 거래에 들어가는 총량적인 비용이 커지게 되고, 한편으론 수입물가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게 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만 통화가치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에 내몰리며 단기간에 통화가치가 20% 넘게 폭락한 스리랑카의 사례는 글로벌 경제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소란으로 치부하더라도, 엔화와 유로화 같은 준기축통화들도 달러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엔화는 달러 대비 1998년 이후 가장 약해졌고, 유로화 가치도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달러 강세는 각국 중앙은행 간 긴축 강도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선제적인 긴축을 단행했지만 미국 연준이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으로 따라오면서 이달 말이면 한·미 금리가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ECB(유럽중앙은행)는 21일에서야 기준금리를 처음 인상했지만 이탈리아와 같은 역내 재정부실 국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보니 긴축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은행은 아예 금리를 올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미국만 파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니 달러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달러가 강해지면 미국 밖의 나라들에서 큰 탈이 나곤 했다. 1980년대 초의 강달러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부채위기로 귀결됐고, 1990년대 중반의 강달러는 멕시코와 태국·한국을 거쳐 러시아까지 이어졌던 신흥국 연쇄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2015년의 강달러는 중국 경제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미국보다 어느 정도 저금리로 가야

미국이 계속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가 강해지면 이번에도 다른 나라들이 곤혹스러워질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맞서는 이번 긴축 국면에서 한국은행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보다 7개월이나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렸고, 이달에는 사상 초유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라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긴축 속도를 따라가는 건 버거운 일이다. 민간 부채가 급증해 있는 상황에서의 금리 인상은 큰 부작용을 낳기 쉽고, 만성적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민간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필자는 미국보다 어느 정도 낮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두 나라 간 금리차가 너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역사적으로 한·미 기준금리는 2000년에 1.5%포인트까지 역전됐던 사례(한국 5.0%, 미국 6.5%)가 있지만 당시는 금리를 보고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에 대한 채권시장 개방이 충분히 이뤄졌던 시기가 아니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채권시장에 진입한 이후의 최대 금리차 역전의 시기는 2006년이었는데 당시의 금리차는 1.0%포인트(한국 4~4.25%, 미국 5~5.25%)였다.

강달러의 진정은 다른 나라가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림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가 긴축 강도를 늦추는 시점에서 현실화될 것이다. 미국도 3월 이후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면서 경제에 주름이 잡히고 있다. 올해 초 3.9%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던 미국의 2022년 GDP 성장률 예상치는 최근 2.1%까지 하향 조정됐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3%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이번 긴축 사이클의 종착점은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물가 상승률, 예컨대 오랫동안 관습적인 목표치였던 2% 내외의 물가상승률까지 물가를 끌어내리기보다는 다소 높은 물가와 다소 높은 금리가 공존하는 선에서 끝날 것으로 본다. 질병과 지정학적 갈등, 세계화의 후퇴라는 공급발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이번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잡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결국 용인할 물가에 대한 중앙은행의 판단이 중요한데 미국의 금리 정상화가 이뤄진 이후인 올해 4분기 즈음 연준의 선택이 다른 나라들의 통화정책과 강달러 진정 여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이번 인플레 금리 인상으론 못 잡아

아무튼 이번에도 기축통화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달러는 권력이다. 얼마 전 한·미 재무장관 회담에서 통화스와프가 거론됐다. 중앙은행의 업무인 통화스와프가 행정부 관료들의 만남에서 의제가 된 것은 그만큼 외환시장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일 테다. 표면상으로는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에 원화를 주고 연준으로부터 달러화를 받는 스와프이지만, 사실은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달러 공여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달러가 필요하지만, 미국은 원화가 필요하지 않다. 스와프는 회계적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주기적으로 달러 위기론이 대두됐지만, 여전히 달러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분열되는 세계에서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통한 원유 수입을 도모하고 있고, 러시아는 가스 수출의 대가로 자국 통화인 루블을 요구하고 있지만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기는 힘들 것이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돈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야 한다. 자국 통화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은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로부터 재화와 용역을 수입해 그 대가로 자국 통화를 지불하는 국가만이 기축통화국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강화됐던 보호무역주의는 반칙이 아닐 수 없다.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이점을 누리면서 자신의 책무는 방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과 아시아 등 구대륙이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미국에 수출할 여력이 없었을 때 미국은 무상원조를 통해서라도 달러를 공급했다. 유럽에 대한 원조인 마셜 플랜, 한국전쟁 직후의 대한 원조가 그 사례들이다.

달러 이후의 대안 통화로 기대를 모았던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르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시장 개방에 소극적이고,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다. 신흥국에 중국 자본을 공여하는 일대일로 역시 너무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다. 중국 자본이 들어간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서 반중 감정이 커지고 있다. 좋으나 싫으나 달러 패권의 세상이 바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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