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정적자가 글로벌 경제의 약한 고리

2024.04.18 20:42 입력 2024.04.18 20:45 수정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미국 재정적자가 글로벌 경제의 약한 고리

금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어섰고, 코스피는 2600선을 하회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가 힘들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금리를 낮추기에는 미국 경제가 너무 뜨겁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안정되기는 어렵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존립 근거로 삼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통제하에 순조롭게 억제된 경우는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었다. 대체로 경제에 큰 탈이 나고 나서야 물가가 잡혔다. 197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린 후에야 멈췄는데, 당시의 고금리는 미국 경제의 리세션과 달러 부채가 많았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됐다. 1980년대 후반 인플레이션은 미국 주택대부조합(S&L)의 파산을 불러온 이후에야 진정됐고, 1990년대 중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긴축은 한국과 태국 등을 엄습한 신흥국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2000년대 초반의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긴축은 미국 모기지 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경제 연착륙을 유도해 인플레이션 제어를 도모하는 것이 긴축 정책의 목적인데 금리를 올리거나, 고금리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위기가 뒤따르곤 했던 셈이다. 특히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의 고금리는 글로벌 금융환경을 긴축적으로 만든다. 미국발 고금리의 후유증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빈번히 나타났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 정부 지출 확대 이자 비용 증가

이번에도 글로벌 경제 어딘가의 취약한 부분이 심대한 타격을 받아야 물가가 안정되지 않을까 싶다. 물가 안정을 위해선 어떤 희생을 치러도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나타난다면 미국 정부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출발점이 될 것 같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국면도 있지만,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훨씬 크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의 공격적 재정지출은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 2022~2023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0~0.25%에서 5.25~5.5%까지 올렸지만, 같은 기간 미국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5.8%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지출을 늘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편 고금리가 장기화한다면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경제주체는 미국 정부가 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2023년 말 기준 GDP의 122%에 이르고 있다. 요즘처럼 국채 금리가 고공권에서 움직인다면 미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이자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 국면에서 정부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의 급격한 추락을 막은 바 있지만, 이는 디플레이션이 심각해 정부 지출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았고, 절대 저금리가 유지되면서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1월에 있을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재정에 대한 우려를 높일 수 있는 이벤트라고 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한다면 기존 재정 폭주가 지속될 것이다. 이 경우 IMF의 추계에 따르면 미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가 2028년 말 13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보는데, 대폭적인 감세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세는 보수 정파인 공화당의 단골 공약이다. 정부 재정지출과 마찬가지로 감세도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재단할 순 없지만, 정부의 부채가 커진 상황에서 단행되는 감세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요즘 트럼프 캠프의 경제 책사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이가 아서 래퍼이다. 1980년대 보수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레이건 행정부 때 ‘세율과 재정수입’의 관계를 설명한 ‘래퍼 곡선’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래퍼는 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정부의 재정수입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너무 많은 파이를 가져가면, 민간 플레이어들의 의욕 저하가 성장을 잠식한다고 본 것이다. 적절한 감세는 민간의 활력을 높여 경제 규모를 키울 수 있어 정부의 세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감세정책으로 재정 악화 사례 많아

경제 운용에서 정부 몫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크게 하자는 주장은 경제적 보수주의자라면 낼 수 있는 의견이다. 문제는 감세가 성장 활력을 제고해 세입을 늘리면서 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감세가 재정 건전성을 높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감세는 재정을 악화시키곤 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대폭 감세를 단행했음에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늘어났다.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특히 1980년대는 소련과의 냉전으로 국방비가 경직적인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고전했다. 두 번째 감세는 2001~2002년 공화당 부시 행정부 때 이뤄졌다. 감세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는 빠른 속도로 불었다. 2022년 영국에서는 1980년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레이건 대통령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었던 대처 총리를 추앙하는 엘리자베스 트러스라는 여성 정치인이 총리에 올랐다. 트러스는 보수 정파의 단골 공약인 대규모 감세를 주장했지만, 채권시장은 그의 정책을 강력하게 응징했다.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로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트러스는 집권 50일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재정지출은 미국 경제를 강건하게 유지시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비용도 함께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고금리와 급격히 늘어난 정부부채도 지속 가능한 조합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이후에 나타나곤 했던 경제위기는 미국의 과도한 정부부채에서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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