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지켜보겠다

2022.08.22 03:00 입력 2022.08.22 03:01 수정

빗속 작업 중 감전사한 이주노동자,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한 하청노동자, 반지하 방에서 탈출하지 못한 신림동의 일가족과 상도동 주민. 폭우와 함께 사상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8월16일 사회단체들은 ‘폭우참사로 희생된 주거취약계층, 발달장애인, 빈곤층, 노동자 추모행동’을 시작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길게 호명한 추모가 있었던가. 이 모든 정체성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은 우리가 지금 마주한 위협이 어떤 중층의 위기를 담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단지 폭우가 아니라 기후재난으로 인한 기상이변이 반지하 생활자의 삶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간만 뜯어고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 반지하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등록을 마친 장애인이라는 ‘확인된 범주’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없었거나 부족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정부당국의 대처는 너무 빠르고 새롭지도 않았다. 서울시는 곧바로 ‘반지하 일몰제’를 내놓았고,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270만호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대책은 오히려 반지하 생활자들의 주거불안을 가속시킬 우려가 있어 발표만큼이나 빠른 비판에 직면했고, 국토부의 대책은 더 많은 지역에, 더욱 빠르게, 안전기준은 완화하고 민간 지원은 확대해서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선언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불안한 주거 상황을 겪는 이들에 대한 대책은 올해 안에 세우겠다는 모호한 내용도 포함했지만, 전체 자료의 주된 내용은 민간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라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가 주택을 공급해온 방식 그대로를 대책으로 내놓은 셈이다.

이 대책들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서울시의회와 서대문구, 관악구에 만들어진 분향소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에는 ‘이 문제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다짐이 많다. 재난이 발생하면 잠시 요란하지만 관심이 사라지면 다음 재난까지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왔기에, 충격과 슬픔에 익숙해지지 않고 꾸준히 지켜보겠다는 것이 변화를 원하는 시민의 약속이 되고 있다.

이번 수해로 세상을 떠난 홍○○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면세점 판매 노동자로 일해온 그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의 앉아서 일할 권리, 쉴 권리를 위해 싸워왔다. 동료들은 홍○○님을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했던 사람, 다정했던 사람으로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함께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이 아니라 ‘함께하자’던 그의 생전의 말에 응답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위기가 근본적이고 복합적인 만큼 쉬운 길은 없을지 몰라도,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길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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