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선 구제, 후 회수’가 먼저다

2024.04.28 20:34 입력 2024.04.28 20:36 수정

총선이 끝났지만 21대 국회의 임기는 아직 남았다. 21대 국회가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숙제 중 하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이다. 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부족한 점이 많아 시행 후 보완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약속이었다.

총선이 끝난 이후 야당 역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21대 국회의 남은 과제로 꼽았다. 문제는 정부·여당이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수조원이 들어갈 것이라며 반대를 표명했다. ‘5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예상치도 내밀었다.

하지만 정부의 산식은 실제 개정안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전액 보상한 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반면 현재 개정안의 ‘선 구제, 후 회수’는 세입자의 보증금 채권을 평가금액에 따라 매입하고 이를 다시 경·공매를 통해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액을 보상하는 것도 아니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없다. 국토부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피해자들을 상대로 악선동을 반복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선 구제, 후 회수’가 필요한 이유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를 본 세입자들은 사실 확인과 민형사적인 조치를 위해 홀로 뛰어다닌다. 건물주의 금융관계와 가족관계, 은행, 법원, 경찰서, 인터넷에 퍼진 부정확한 정보, 수임료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변호사와 법무사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는 사이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끝이 없는 빚을 감당하느라 건강을 잃기도 하고, 결혼과 출산 계획을 포기하거나 불화로 가족을 잃기도 한다. ‘선 구제, 후 회수’의 진정한 효용은 이 과정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정부가 대리한다는 데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재정이 소요된다. 피해자들의 채권을 너무 헐값에 사면 실질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최우선 변제금(보증금의 30%)에 미달하는 채권도 최우선 변제금 수준으로 매입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우선 변제금도 못 받는 이들이 가장 먼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최소한 최우선 변제금만큼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에 따른 비용은 최대 5000억원이다.

돈이 적게 들어가니까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의 사회적 해결이 필요한 이유는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경매장을 쫓아다니고 고발장을 내려 경찰서를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건을 수임해 제대로 조사하고 대응해야 한다.

부정확한 정보와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피해자들의 일상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재정을 사용할 적소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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