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식에서 “우리 세계의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전 세계에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시의 취임사에는 ‘자유’와 관련된 표현이 49번(Freedom 27번, Liberty 15번, Free 7번)이나 등장한다. 자유는 미국 보수진영, 특히 그가 속한 공화당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무엇보다 그가 첫 번째 임기 동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였던 잇단 전쟁을 자유를 위한 노력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컸다. 하지만 그 전쟁으로 수십만명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부시는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를 미국의 패권을 폭력적으로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에 대한 사랑이 깊다. 취임사에 35번 등장했던 자유라는 단어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33번 사용됐다. 윤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자유를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자유의 결핍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문제가 되고 있는 때도 아니지 않은가.
자유라는 단어에는 으레 따라붙는 단짝이 있다. 바로 ‘평등’이다. 1776년 미국 건국의 기반이 됐던 독립선언문의 서두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돼 있다. 1789년 나온 프랑스 인권선언도 제1조가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이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근대의 기점이 되는 두 사건 이후 자유와 평등은 세계가 추구하는 근본적 가치로 인식됐고, 실제 인류의 역사도 자유와 평등이 확장되는 길을 걸어왔다.
자유와 평등은 모두 훌륭한 가치이지만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자유를 강조하다 보면 평등이 훼손되고, 평등을 확대하면 자유가 축소될 때가 있다. 예컨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 쓰면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자기 돈을 자기가 원하는 데 쓸 자유가 제한된다. 그러다보니 자유를 강조하느냐 평등을 강조하느냐는 정치현실에서 세금을 줄이느냐 늘리느냐, 복지를 축소하느냐 확대하느냐로 발현되곤 한다. 윤 대통령이 외친 자유도 이런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세제개편안에는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상속세·주식양도세 등의 대대적인 감세가 포함돼 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은 조만간 발표할 내년도 예산안의 골자가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건전재정으로의 전환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적부문의 긴축”이라는 표현까지 했다. 세금을 적게 걷으면서 건전재정을 유지하려면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복지의 축소도 불가피하다.
이런 알고리즘은 부시 행정부를 비롯해 수십년 동안 미국 공화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시도한 ‘야수 굶기기(starving the beast)’ 전략이다. 야수 굶기기는 호랑이를 생포하는 방법이다. 함정에 빠진 사나운 호랑이를 오랫동안 굶긴 뒤 우리 안의 먹이로 유인해 손쉽게 잡는 것이다. 감세(호랑이 굶기기)를 하고 그 결과 늘어나는 재정적자(배고픈 호랑이)를 구실 삼아 복지 지출 등을 줄이는(우리 안에 넣기) 전략이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정책에서도 야수 굶기기의 조짐이 보인다.
부시도 세금을 인하했고, 그로 인해 모두가 잘사는 경제성장을 장담했다. 그런데 부시는 정작 선거전략에서 감세를 활용하지 않았다. 부자감세에 대한 미국인 대다수의 반발이 거셌고, 감세가 그의 공언대로 경제 호황으로 이어지지 못해서다. 그를 재선으로 이끈 것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미국을 지킨다는 ‘안보’ 논리였다. 감세는 부시도, 미국 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부자들만 도와줬다. 그리고 그의 임기 말(2008년)에 미국은 금융위기라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적 파국에 직면했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약과 혁신이 필요하고, 도약은 혁신에서 나오고 혁신은 자유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도 그렇게 금융산업에 혁신할 자유를 줬다. 금융산업은 온갖 혁신을 통해 부실을 잉태하는 탐욕의 파생상품들을 쏟아냈고, 이는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그 자유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