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만들기, 서두르지 말고 더 상상하자

2022.09.06 03:00 입력 2022.09.06 10:44 수정

용산공원 부지(푸른 실선). 남쪽 끝에는 국립현충원이 있어 호국을 드러내고, 북쪽 끝에는 남산공원의 안중근·김구 동상을 통해 동양평화와 분단 극복을 소환한다. 동쪽에는 한국의 다문화공간을 대표하는 이태원이 있고, 서쪽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과 식민지박물관, 효창공원은 민족민주를 표상한다.

용산공원 부지(푸른 실선). 남쪽 끝에는 국립현충원이 있어 호국을 드러내고, 북쪽 끝에는 남산공원의 안중근·김구 동상을 통해 동양평화와 분단 극복을 소환한다. 동쪽에는 한국의 다문화공간을 대표하는 이태원이 있고, 서쪽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과 식민지박물관, 효창공원은 민족민주를 표상한다.

용산기지 땅을 한반도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보여주며, 미래까지 말하는 다기능 복합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에게 식민과 열전은 과거이고, 냉전의 산물인 분단은 현재이며, 민족과 지역의 분단 극복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상징공간으로 거듭날 바탕을 미래 세대에게 주는, 가장 한국다운 공원 만들기의 지름길은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을 이전할 때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필자는 경향신문 3월24일자 칼럼에서 옮기려면 ‘큰 그림을 그려 국민을 설득하라’고 쓴 적이 있다. 생태공원을 말하며 역사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큰 그림을 그려보라고. 그러면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예로 들었다.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필자가 내셔널 몰과 연계시켜 용산공원화에 관한 담론과 디자인을 처음 말한 때는 2018년 8월29일자 칼럼에서였다. 그 당시만 해도 용산공원화를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모델처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휴식처로서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의 역사와 가치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내셔널 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 센트럴파크에서 배워야 할 점

물론 ‘치유를 통한 회복’을 지향하는 용산공원을 조성할 때 도심 속의 초대형 기획 공원인 센트럴파크는 당연히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중장비로 경관을 변경하기보다 기존 경관의 특징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이다. 대중이 휴식을 취하며 레크레이션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공원이기 때문이다. 용산공원 기본계획도 이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배워야 할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센트럴파크는 100만평이 넘는 긴 띠 모양의 공원이다. 세계 최대의 번화가인 맨해튼에 있는 데도 공원의 경계가 160여년 전의 처음과 똑같다. 경계를 허물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4개의 도로망으로 도심 교통의 흐름을 이어주고 있다. 그만큼 원칙을 갖고 관리해 왔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기본설계 및 공원조성계획’이 고시되기도 전에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마련한다며 세 곳의 산재부지를 매각했다. 100년이 넘는 건물이 있는 데도 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유엔사 땅과 캠프킴 부지에 용적률 600%와 800%의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했다.

두 곳의 건물은 높이만 최소 70~100m 이상이어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무너뜨리고 남산의 전경을 가릴 것이 분명하다. 혹여 대통령 관저를 용산공원 안에 지어도 경호에 영향을 줄 것이다.

센트럴파크를 조성할 때 인공시설물을 최소화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초기 공원 관리 책임자인 올름스테드는 신축물이 들어서는 순간 공원의 기능은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계 10대 미술관의 하나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공원 내에 두도록 허용한 결정도 후회할 정도였다.

올름스테드의 후임 관리자는 공원을 관리할 때 가장 어려웠던 일로 잔디와 나무를 보호하는 업무를 꼽지 않았다. 야외조각품을 기증하겠다는 선의의 제안을 거절하는 일을 꼽았다. 지금 공원에 있는 50여개 야외조각품 가운데 뉴욕시가 돈을 들여 구입한 조각상은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최근 용산공원에 보훈과 역사를 아우르는 호국·추모시설을 설치하여 호국보훈공원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념비를 세우고 추모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리 되면 공원 조성 이후에도 문제다. 비슷한 정책욕구를 가진 국가기관이나 지자체가 뭔가를 남기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겠는가.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개인이나 기관이 뭔가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독립기념관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시어록비 건립문제가 하나의 보기일 수 있다. 애초 기념관은 시어록비를 100기까지만 세우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시어록비는 목표보다 이미 초과 건립되었고 중단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누구는 되고 안 된다거나, 왜 100기까지인가를 판단할 사회적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미국의 역사와 가치를 드러낸 내셔널 몰

독립기념관의 시어록비 설치문제는 전체 공간의 장기적인 조성계획과 일관된 추진력이 없었던 데 더 근본 원인이 있다. 용산공원도 마찬가지이다. 용산공원 조성의 두 가지 원칙, 곧 생태공원이며 신축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사회적 합의 사항이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역사와 문화를 접목해 ‘국가공원’을 조성하자는 사회적 합의는 아직까지 없다. 달리 말하면 국토교통부는 국가공원이란 무엇이며, 용산공원에서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 가겠다는 담론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래서 생태와 역사가 결합하여 발신하는 이미지와 향유하는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내셔널 몰은 이러한 취약점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내셔널 몰은 신생 독립국가 미국의 새로운 수도로 기획된 워싱턴DC의 중심에 있다. 그곳 자체는 애초 역사성이 있는 땅이 아니었다. 용산공원 땅과 크게 다른 점이다.

DC를 설계한 피에르 랑팡은 도시공간을 격자형과 방사형으로 연결하고, 그 중심에 의회의사당과 백악관을 두었다. 두 건물이 워싱턴기마상에서 만날 수 있게 하여 훗날 내셔널 몰이 되는 공원을 조성했다. 중심지에 상징적 장소나 건물을 두어 중심에서 힘 있게 뻗어나가는 형태의 도시구조를 구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랑팡은 두 건물이 서로 마주하지 않게 대각선으로 배치했다. 대결보다 견제의 측면에서 권력 분립을 추구한 미국식 공화제를 시각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구체화한 것이다.

내셔널 몰은 랑팡의 계획을 바탕으로 1902년에 수립된 맥밀런계획 때 다시 한 번 크게 바뀌었다. 맥밀런계획은 도시 중심부에 기념관을 세우고 대규모 기념행사가 가능한 광장을 조성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동쪽 끝의 의사당과 마주한 서쪽 끝에 1922년 링컨기념관을 세웠다. 이 기념관과 알링턴국립묘지를 연결하는 교량을 만들어 남북전쟁으로 갈등했던 남과 북을 연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북쪽 끝 백악관과 마주한 남쪽 끝에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기념관을 1939년에 세웠다. 워싱턴기념비는 동서남북 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내셔널 몰이란 공간의 기본축이 확립된 것이다.

이처럼 내셔널 몰은 DC라는 계획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성되어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이 도전받고 이룩한 가치를 하나씩 담아내고 표현한 공간이다. 공간과 건축물의 기본 배치가 미국의 역사와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다운 공간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셔널 몰의 안과 밖에는 매우 다양한 박물관과 추모시설이 들어서 있다. 마음먹고 서두른다 해도 4~5일에 걸쳐 다 관람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탁 트인 시선을 확보해주는 휴식처이자 놀이공원이며 운동장의 기능도 있다. 내셔널 몰은 다양한 기능의 복합공간이어서 어느 하나의 기능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공원이기도 한 것이다.

■ 막개발 중지하고, 더 상상하자

내셔널 몰보다 훨씬 넓고, 센트럴파크의 크기와 비슷한 초대형 도심 공원인 용산공원도 다양한 기능의 복합공간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곳은 식민과 냉전 그리고 분단의 역사와 현재를 응축해서 말해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땅과 건축물이 있다. 지금의 한국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다 용산기지 주변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남쪽 끝에는 한강 넘어 국립현충원이 있어 호국을 드러내고, 북쪽 끝에는 녹지축 구축의 연장선상인 해방촌을 지나 남산공원에 있는 안중근과 김구 동상을 통해 동양평화와 분단극복을 소환할 수 있다. 동쪽에는 한국의 다문화공간을 대표하는 이태원이 있고, 서쪽에는 민주인권기념관과 식민지박물관 그리고 효창공원이 있어 민족민주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용산공원을 호국보훈공원으로 만들려는 구상은 내셔널 몰을 선택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이며 공원의 기능을 특정 방향으로 과잉 단순화하는 발상이다. 지금은 방호부지와 드래곤힐호텔의 반환 협상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막개발을 중단하고, 공원 안과 밖의 동서남북축이 만나는 중심에 대통령실이 위치하도록 담론을 만들며 공원디자인을 수정해야 할 때이다.

지금 세대는 용산기지 땅이 한반도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보여주며, 미래까지 말하는 다기능 복합공간이자 대한민국의 상징공간으로 거듭날 바탕을 미래 세대에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국인에게 식민과 열전은 과거이고, 냉전의 산물인 분단은 현재이며, 민족과 지역의 분단 극복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다운 공원 만들기의 지름길은 여기에 있다.

■신주백

역사학자.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한국근현대사를 동아시아사에 접목하여 연구하며 현재를 고민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한국역사학의 전환>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 등을 간행했다. 저서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만들기>, 이외에 공저로 <용산기지의 역사> <분단의 두 얼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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