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책임이다

2022.09.28 03:00 입력 2022.09.28 03:02 수정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정치는 책임이다

지록위마, 그러니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는 고사의 21세기 버전이 등장했다. 사슴이 바이든으로, 말이 날리면으로 대체된 ‘지바위날’이 그것이다. 중국발 지록위마를 대체할 ‘K지록위마’가 탄생한 것이다.

지록위마는 2200여년 전 진시황 사후에 권력을 잡은 승상 조고가 벌인 정치적 술수였다. 그는 조정의 신하들이 자기를 얼마나 추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황제 앞에 사슴을 끌어다 놓고는 말이라고 했다. 황제는 승상께서는 왜 생뚱맞게 사슴을 말이라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하들은 승상의 말이 맞는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이런 일을 벌인 다음 조고는 사슴이라고 답했던 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죄목을 뒤집어 씌워 모두 죽였다.

하여 지록위마는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움켜쥔 조고의 오만과 방자함이 빚어낸 덜떨어진 자기 과시가 아니었다. 지록위마의 속셈이 색출과 제거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찾아내어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일종의 편 가르기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자들을 구분한 후 내 편에게는 무한의 자유를, 반대편에게는 파멸을 안기고자 한 것이 지록위마의 실체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편을 갈라야 했던 까닭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응당 져야 할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슴이라고 답한 쪽을, 곧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쪽을 지워버려야 했다. 백성이야 찍어 누르면 되었으니 신경 쓸 이유가 없었고, 정치적 책임을 운운하며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자들을 조정에서 솎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그러나 책임은 절대로 지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조고는 그렇게 정치는 책임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무책임의 자유로 한껏 유린했다.

그런데 지록위마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바가 있다. 지록위마는 왕조 말기적 현상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조고는 지록위마를 자행한 후 황제마저 살해하고 새 황제를 세웠다. 그러나 그는 새 황제에 의해 삼족이 멸해졌고 진 제국도 얼마 후 바로 망했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일삼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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