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 그 후

2022.10.06 03:00 입력 2022.10.06 03:01 수정

수습기자 시절 한 경찰관이 ‘단독 기사’라며 사건을 알려줬다. 3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변사 사건’을 보고하면 선배에게 ‘면피’할 수 있을 거라는 경찰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죽었는데 ‘보고’ ‘면피’를 떠올려야 하다니. ‘기자의 일이란 무엇인가.’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그 후에도 그런 일은 반복됐다.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이 죽었는지 여부를, 사람이 죽었다면 많이 죽었는지 여부를, 사람이 어떻게 죽었고 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경중을 따지는 대화를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사건은 대상화됐다. 성범죄 피해자의 일기를 ‘후속 보도’의 재료로 쓰고 사건을 부를 때 피해자를 호명하면서도 사건이 ‘도구화’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 기자의 시각은 피해자의 고통과 멀어진다.

사람이 희생된 사건, 사람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언론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신당역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 곧 한 달이 된다. 스토킹으로 오래 고통받던 여성이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것이 사건의 본질이지만 이와 거리가 먼 보도가 이어졌다. 피해자의 성별이 강조되면 성범죄 보도는 선정적으로 흐르지만 ‘女역무원’이라며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고 제목에 불필요하게 여성을 강조한 보도는 여전했다.

가해자의 대학 동기를 취재해 “여자 동기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평범한 친구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31세인 가해자의 대학 시절과 범죄 사실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사건과 관련이 적은 보도는 가해자의 서사를 강화하며 결과적으로 범죄 행위를 희석시킨다. 가해자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술에 의존했다는 기사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적이다. 술, 약물 등을 탐닉했던 상황을 강조하면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 ‘도구화’하지 않으려 노력

‘스토킹 야당’이라는 표현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시점에 한 신문사는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야당의 지적이 ‘스토킹’이라며 사설을 썼다. 사람이 살해된 사건에 대한 감수성은 고사하고 야당의 지적을 집착을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에 비유한 것이다. 야당에 대한 지적은 할 수 있다. 분노하고 싶은 건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무신경한 기사 작성, 편집 철학이다.

경향신문도 사건을 도구화해온 언론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한다. 사건 당일 편집국에서는 피해자의 피해 상황이 아닌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기로 결정했고 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이 아닌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라 명명했다. 왜 피해자를 잃었는지,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보도가 이어졌다.

성평등을 지향하는 한편, 성범죄 사건 보도 시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는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편집국 내부에서 보완 중이다. 젠더 데스크는 젠더 관련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각 부서와 토론하며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14년 전 변사 사건 보고는 ‘포기’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판단했고 유가족의 아픔을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기자일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제는 답을 말할 수 있다. 언론의 역할은 사건을 취재하되 사건을 도구화하지 않는 것, 사건이 발생한 구조에 문제제기를 하고 사회가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지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가족을 갑작스럽게 잃고 생의 중심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서 있는 곳이 무참히 흔들리면 가족을 잃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누렸던 평범한 저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깨달을 것이다. 유족들은 그 평범한 저녁들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누렸을 피해자의 오늘과 피해자가 사라진 오늘을 견디고 있는 유족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재발 방지 위한 노력 기록하며 동행

그렇지만 언론은 언론의 일이 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잃은 모순의 구멍들을 메우는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일. 사건 이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애자, 구속 제도를 손보자고 시끄러웠지만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제대로 논의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또 개정안 통과는 시작일 뿐이다.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기록하며 함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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