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엘리트들 공감능력은 왜 낮을까

2022.12.22 03:00 입력 2022.12.22 03:04 수정

똑똑한 아이들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능력도 뛰어날까? 그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내가 만나는 대한민국 1%의 학생들 가운데 공감능력이 결여된 학생들을 자주 본다. 어쩌면 공감능력 부족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공통 문제일지 모른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 관료들의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 MBC 사태 등에 대응하는 방식에 국민들은 “공감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고 말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소통과 협치 능력도 제한되며, 그래서 들이댈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법과 원칙’이다. 이 과정에서 대화 단절과 투쟁이 뒤를 잇는다.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 특히 자신의 노동을 갈아 넣어야 겨우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되는 사회적 약자층에 대해서조차 공감과 연대 대신에 ‘법과 원칙’이 작동한다.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로 선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하고도 잘못된 선택이다. 공감능력은 ‘함께 살아가는 능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기숙사를 청소하는 이민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권력 엘리트들이 처음부터 공감능력 결핍이라는 DNA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생적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감능력을 학습할 수 있다. 다만 양육과 성장, 교육과 경험 속에서 타자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 혹은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되었을 뿐이다. 청년 전기까지 이어지는 십수년의 과잉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성적을 올리는 데 공감능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시켜 공부에 집중하도록 한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학생들이 입시에 성공하고 엘리트 계층의 반열에 들어선다. 결국, 한국 엘리트들의 공감능력 부족은 과잉경쟁이라는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그러한 학습경험의 결핍은 그대로 공감능력의 결핍을 낳는다.

2021년 ‘OECD 사회정서역량 조사결과 보고서’는 사회정서와 학업성취도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우선, 개인의 정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들(예컨대 호기심, 자제력, 자기통제 등)은 학업성취도에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반면,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들(예컨대 공감능력, 협동성, 친교성 등)은 학업성취도와 거의 상관이 없거나 혹은 오히려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런 경향은 10세 아동보다 15세 아동에서 두드러졌다. 물론 확증된 결론은 아니지만, 이 조사가 말해주는 것은,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사는 능력(공감-친교-협동)의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며,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유네스코가 강조해왔던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학습하는 일(to learn to live together)’은 모든 학교교육과 평생학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함께 사는 능력’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학습되어야 할 역량이다. 어릴 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사회적 연대와 공감, 공존의 능력을 갈수록 퇴화시켜가는 학교체제와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공감 학습은 정서와 인지, 상황과 맥락을 넘나드는 범경계적 학습을 필요로 한다. 공감이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해석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전자를 정서적 공감능력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지적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공감학습을 위해서는 마음과 머리가 모두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입시가 인지능력, 예컨대 비판력, 해석력, 분석력 등을 측정하는 데 치중해 있는 반면, 공감적 사회성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입시에서 공감능력을 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면접을 하는 것이다. 공감과 소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공감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기술도 필요하다. 면접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공감하고 대처하려는지 대화해볼 수 있다. 대화를 해보면 수리적·법칙적 원리에만 매달리는 방식의 사유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느낄 수 있는 방식의 사유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공유된 마음’을 선물받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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