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오답 노트

지난주, 두 명의 프레지던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달랐다. 이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소속 집단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가늠자이며,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미국 코넬대 프레지던트 폴락 총장은 학년 시작 메시지를 통해 “코넬에서의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를 갖고 한 해 동안 공연·전시회·강연 등 많은 행사가 열릴 것임을 알리고, 구성원의 참여를 당부했다. 표현의 자유는 ‘거의 모든 형태로서의 자유의 모태이자 필수조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전파하는 핵심 요소이며, 경청과 토론이란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대학에서 이런 자유가 공격받고 있음을 그는 우려한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지난달,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대한민국 ‘프레지던트’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정말 잘한 일이 없거나, 언론이란 원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구이니 당연한 일이다. 언론이 정부 찬양 앵무새라면 공산당 기관지나 선전도구와 다를 바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이후 국내 언론과 담장을 쌓았다. 최근에는 언론인 80% 이상이 반대한 언론장악 의혹 당사자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다. 공영방송 이사진들은 줄줄이 해임됐고, 공영방송은 침몰 직전이다. 대한민국의 표현 및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는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정치적 좌파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면 권력이 약하거나 소수 집단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파들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개적 약속은 세뇌를 구성하고, 구성원이 지닌 표현을 억제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상충한다고 주장한다. 폴락 총장은 좌·우파가 우려하는 긴장을 관리하고,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개의 가치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 대학의 임무라고 말한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은 미국 대학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다.

윤 대통령은 도쿄전력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세력들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연수 1과 1을 더하면 자연수 2가 나오겠지만, 생명과 환경에서는 하나에 하나를 보태면 100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0의 환경이 올 수도 있다. 과학은 확률적 계산이지 절대적 답이 아니다. 가치를 포용하는 것이 임무라고 말하는 프레지던트가 있는가 하면,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매몰시키고, 같은 답을 적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을 적으로 모는 프레지던트가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새의 좌우 날개론’은 가정에 오류가 있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어야 협치가 가능하다는 설정이다. 애당초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보는 창은 다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진보가 “우리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공감이 있어야 협치할 수 있다. 협치로 말미암아 함께 날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이 정치 아닌가.

때아닌 이념논쟁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국권 회복과 함께 공산 세력에 맞선 것”으로 정의했다.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 밖으로 철거하는 결정을 내렸다. 항일 조선독립군 토벌을 위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친일 백선엽에 대해선 국가보훈부가 나서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표현의 자유가 아닌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오답노트엔 이전 정부의 탓이 많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핵심 가치인 다양성·형평성·포용성엔 인색하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치우치지 않는 탕평 인사를 하며,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안아주는 포용력 있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게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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