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경 모반사건

2023.10.11 20:48 입력 2023.10.12 13:37 수정

1800년 음력 6월, 정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영남을 좌절에 빠뜨렸다. 1792년 윤4월 영남은 만명 이상이 연명한 사도세자 신원 상소를 올렸고, 그 이후 6년여 만에 영남은 중앙 정계에서 일정 정도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고 있었다. 근 100여년 만에 영남을 향한 왕의 따뜻한 시선을 체감하고 있었지만, 다시 노론 벽파가 자기 정권을 강화하는 과정을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시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슬픔을 빌미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지만, 불안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러던 음력 8월24일, 영남을 절망에 빠뜨린 소문이 퍼졌다. 인동부(지금의 경북 선산군 인동면 일대)에서 모반이 일어났다는 소문이었다. 주모자는 장시경으로, 17세기 영남 유림을 대표했던 장현광의 후손이었다. 소식에 따르면 장시경 형제는 국상을 빌미로 50여명의 병력을 일으켜 수령을 결박한 후, 병마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인동부 수령이 응하지 않자, 그를 관문 밖에 묶어 두고 상주 진영으로 진군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선비 류의목은 안 그래도 영남 처지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데, 이 사태로 인해 영남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강한 절망의 표현이었다.(류의목, <하와일록>)

그러나 사건의 실체는 소문과 달랐다. 이 사건은 부패한 인동부사 이갑회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국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추석 며칠 전이었던 부친의 생신연을 강행했다. 조용하게 생신연을 진행했으면 묻힐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와중에 풍악을 울리면서 성대하게 생신연을 치렀다. 정조 사망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던 장시경의 부친 장윤혁은 평소 인동부사의 처신을 옳지 않게 보고 있었던 터라, 국상을 핑계로 인동부사의 잔치 초대를 거절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되는 사람은 인동부사였다. 국상 중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연 것은 강상을 범하는 죄(유학의 도리를 어긴 죄로, 중죄였다)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이갑회는 권력을 동원해 사태를 모면해야 했다. 추석날 장윤혁의 집 후원에 소머리를 던져놓고 “왕의 장례도 끝나기 전에 소를 도축했다”면서 누명을 씌운 이유였다. 국상 중 소를 잡는 일 역시 강상을 범한 죄였다. 장시경을 비롯한 장씨 일가 사람들은 인동부사에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장씨 문중 장정들과 군졸들이 충돌했다. 이갑회는 이를 빌미로 “이들이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설을 믿고 관아를 침범하고 무기와 군량을 탈취해 서울로 진격하려 했다”라는 혐의를 만들어 붙였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무리한 기소였지만, 이 일로 장시경은 천생산으로 도망치다 자살했다.

강상을 강상으로 덮으려 했던 이갑회의 의도와 달리, 일이 커져 버렸다. 결국 그는 경상감사 김이영에게 장씨 형제들을 모반으로 보고했고, 경상감사 역시 이를 받아 그대로 조정에 보고했다. 그런데 이 일은 실제 사안과 상관없이 영남을 탄압하고 정권을 강화하려는 노론 벽파 입장에선 호재 중 호재였다. 이서구를 조사관으로 내려보내 모반 사건으로 결론짓고, 연루된 사람들을 처벌했다. 그리고 인동을 도호부에서 현으로 강등시켰다. 류의목이 소문으로만 들어서는 알 수 없었던 장시경 모반 사건의 실체였다.

이 사건은 정조 사망을 기회로 영남에서 역모를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돼 영남을 압박하는 빌미가 되었다. 사건을 조작해야 하는 부패한 관료와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당파에 도움만 되면 이를 활용하기 바빴던 노론 벽파의 공모가 만든 사건이었다. 1861년 사건 자료만으로도 장시경에 대한 신원이 이루어질 정도로 명백한 사건이었지만, 노론 벽파는 눈을 감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그 피해는 억울하게 처벌받은 백성들의 몫으로 돌려버렸다. 이렇듯 백성을 대하는 권력이 부패하고, 자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러한 부패마저 이용하는 권력이 존재하는 한, 이는 비단 장시경 모반 사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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