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성평등 모델의 토대

스웨덴 성평등 모델은 모든 책임
남녀가 동등하게 공유하는 기획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돌봄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사회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희망 기획

“정부가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한 것은 없다.”

스웨덴 여성노동연구의 권위자 오사 룬드크비스트 룬드대 교수는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했다. 지식인의 사명이 비판적 성찰이란 생각을 하면서, 왜 그렇게 보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현재 우파 정부가 그동안의 성평등 정책을 흔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도가 더 나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남녀가 하는 일이 매우 뚜렷하게 구분돼 있어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왔다.

스웨덴 성평등 정책의 눈부신 발전은 1960~1970년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이 급물살을 탔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룬드크비스트 교수는 제2물결 여성운동 시기로 알려진 이 기간 스웨덴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이 정부에 여럿 들어가 성평등 정책 기틀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만난 일반 시민들도 여성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때라고 기억했다. ‘민주 정부’나 ‘온정적인 정부’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의식과 실력을 갖춘 여성들이 국가 기구에서 영향력을 가질 때 성평등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테보리대 이자연 교수는 스웨덴 남녀가 동등한 삶을 살게 된 데는 ‘노동’의 권리가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며 소득 일부를 세금으로 내 복지와 연금의 권리를 스스로 축적해간다는 이념이 스웨덴 사회의 기본 정신이다. 따라서 아주 어릴 때부터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일해서 돈을 버는 경험을 쌓으며, 미래 직업을 위해 준비한다. 성인이 되면 성별에 관계없이 직업을 갖고 소득으로 세금을 내 스스로 복지의 권리를 구축해간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는 일도 성별에 관계없이 수행한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스웨덴 모델을 실현하기에는 21세기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 너무 나쁘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건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모두가 일할 기회를 가질 순 없다면, 모두가 돌봄의 책임을 갖는 ‘보편적 돌봄자’의 모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가 큰 한국 사회에서 다른 길로 우회하는 것은 불평등 해소라는 목표에서 멀어지게 할 위험이 있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은 어떤 것일까?

첫째, 노동시장과 조직에서의 성별 격차 해소다. 채용부터 배치, 교육훈련, 승진, 노동시간과 임금, 퇴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구실로 주어져온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를 제거하는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야 하지만 기업 책임도 크다.

둘째, 노동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고 노동의 위계와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다. 모두가 일할 만큼은 아니지만, 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하는 일자리가 많다면, 여전히 일할 기회는 부족할 것이다. 일자리 질의 문제가 그래서 중요하다. 직업의 서열도 바꿔가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나 각 직업의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SES)가 다르지만, 한국 사회에서 직업 서열은 극단적이다. 학력과 학벌, 성별에 따라 직업의 기회가 달라지고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 수준은 크게 다르다. 이런 문제들을 푸는 데는 노동조합 역할이 중요하다.

취업률은 증가하지만 고연령층이 주도하며 20대 취업률은 낮아지는 상황은 성평등 실현에도 대단히 큰 걸림돌이다. 청년들이 왜 ‘백수’의 길을 가는지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임금도 낮고 근무환경도 나쁘고 전망도 없는 일자리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싼값으로 쉽게 부리려는 자본의 욕망, 시장이 알아서 하라는 국가의 무책임, 극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기업의 위기의식, 성실한 월급쟁이보다 벼락부자의 신화를 성공이라고 부추기는 미디어. 그 안에서 청년들은 분노하고 서로에게 화살을 겨눈다.

스웨덴 성평등 모델은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 연금으로 살아간다는 장기적인 생애전망 위에 모든 책임을 남녀가 동등하게 공유하는 기획이다. 더 많은 청년이 일할 의욕을 잃고 혐오 정치에 휩쓸리기 전에 걸림돌들을 치워나가야 한다.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돌봄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사회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희망의 기획이다. 성별이 무엇이든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희망을 청년에게 돌려줘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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