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는 최고의 기업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는 과잉낙관에 대해 주가가 반응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업일지라도 낙관적 기대가 주가에 충분히 투영돼 있다면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장밋빛 미래의 스토리는 투자자들을 매혹하지만, 이미 이런 기대를 넘치게 반영하고 있는 주가는 뒤늦게 매수에 가세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곤 한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일 때가 실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다.
국가 경제 역시 자신감이 넘칠 때가 하강 사이클이 시작되는 변곡점이 되곤 한다.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듬해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중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4조위안의 경기 부양책을 통해 ‘한때는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가 중국을 살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칭송을 받았던 때가 경제적으로는 정점이었다. 부동산에 집중됐던 과잉투자는 지금까지도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 미국의 경제력은 확장과 수축의 사이클을 그려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십수년은 미국 경제의 3차 황금기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 혁명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고, 글로벌 밸류체인 역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고 있다. 중산층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화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가 1차 황금기, 동서 냉전 종식과 정보기술(IT) 혁명을 배경으로 부흥했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를 2차 황금기로 규정할 수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 건국 이래 경기가 100개월 연속 확장세를 나타냈던 경우는 모두 3차례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3번의 황금기가 이에 해당한다.
과거 미국 경제의 장기 확장세는 과잉낙관 속에서 저물어갔는데, 미국 경제가 쇠할 때 나타났던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전쟁, 소프트파워 훼손 등이 그것인데, 이들 요인은 서로 연관돼 있다. 여기에 5번째 공통점으로 주식시장에서의 성장주 강세를 덧붙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호황의 산물이다. 과잉수요가 존재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나타날 수 없다. 경제가 정상치보다 과속 성장할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정부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다. 이에 더해 전쟁까지 벌어지면 정부는 지출을 줄일 수 없게 되고,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동행하는 현상이 빚어지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의 호황이 꺾이는 과정을 복기해보자. 출발은 미국 민주당의 과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대공황 후 1960년대까지는 경제 운용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스 경제학’이 자본주의 주류 모델이었다. 그야말로 진보의 시대였다. 존 F 케네디 사후 대통령에 오른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주당적이었는데, 존슨 행정부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위대한 사회’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원대한 포부가 축약돼 있는 구호였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기 시작한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든다. 여기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전비 지출로 재정적자는 더 확대되고, 1970년대 원유 파동과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은 장기화된다. 이후 1980년대까지 미국은 일본과 독일 등에 밀리는 이류 국가 취급을 받게 된다.
한편 전쟁은 미국이 가졌던 소프트파워의 후퇴를 가져오기도 했다. 파시즘과 나치즘에 맞서 세계를 구했던 미국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 후반 베트남에서 미군이 행한 양민학살이 폭로되면서,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미국 경제 2차 황금기가 끝나갈 때 나타났던 모습도 비슷하다. 역시 재정적자가 출발점이었다. 케인스주의자의 시대는 가고, 1980년대부터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보수주의 경제학이 득세한다. 정부 기능 축소, 규제 완화, 민영화, 감세 등이 시대정신이 됐다. 2000년대 초 재정적자 확대는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파격적인 감세가 원인이었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름 붙은 대규모 군사작전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다.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이때도 바닥까지 추락한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장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불통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특히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는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의 대립이 격화했다.
재정지출 확대나 감세는 나름의 선의를 가진 정책이었을 테고, 전쟁 역시 자신들의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과잉을 불러왔다. 1960년대는 진보주의자들, 2000년대는 보수주의자들의 과욕이 재정적자를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미국이 벌였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베트남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2차 이라크 전쟁 등도 자국의 필요가 언제나 관철돼야 한다는 자의식 과잉의 산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장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가장 자신감에 차 있을 때 재정적·군사적 과잉팽창이 나타났고, 이는 도리어 미국의 경제적 패권 상실로 귀결되곤 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욕은 정부지출 증가로 이어져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2개의 전쟁에 지원을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체시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번영하던 제국에 황혼이 물들 무렵 주식시장에서는 성장가치로 무장한 종목들의 버블이 만들어졌다. 1차 황금기가 끝날 무렵에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로 불렸던 성장주 버블이 있었고, 2차 황금기 종반부에는 닷컴 버블이 있었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도 매력적인 7개 종목(magnificent 7)으로 불리는 성장주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고, 가장 좋아 보일 때가 실은 새로운 변화로 가는 변곡점인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