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0일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과 정치인들이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대폭 감축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문제가 제기되었다. 여성가족부 측에서는 정책 수행의 실효성을 따져 중복 사업을 줄이고자 예산을 감축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산 삭감에 따라 피해자 지원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답을 하지 못했다. 현장 활동가들은 중복 사업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피해자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력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 배정은 단지 특정 사업의 유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에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여 해결하려고 하는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여성이 경험하는 복합적 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하고 인력과 실행 체계를 지원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게 행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대응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폭력 문제 해결과 성차별 해소라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그 유형과 양상에서 악화일로 상황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각종 형태의 혐오범죄가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여성 대상 폭력 피해자 지원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편의점 여성 노동자의 헤어 스타일을 빌미 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혐오범죄가 일어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물리적 폭력범죄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사이버 불링과 다양한 디지털 혐오 양식을 사용하여 특정 여성을 공격하는 행위 역시 올해 일어난 사건만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의 특성을 악용하여 취약한 여성을 착취하는 일도 계속된다.
여전히 우리 언론은 이러한 문제를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사건으로만 보는 것 같다. 이번 편의점 여성 노동자에 대한 폭력 사건을 무차별 혹은 묻지마 폭행이라고 명명하면서 CCTV 사진을 첨부하는 식으로 보도한 것에서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클릭 유도가 중요한 가치가 된 현재의 뉴스 소비 환경에서 언론이 하나의 주제를 집중하여 다루는 것이 어려워진 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언론은 사건 발생 맥락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최근 일어난 여러 여성 대상 폭력 사건 보도가 해야 할 일은, 왜 이러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정부 정책에 대한 사회적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련의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는 해외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어 국가의 체면이 손상되었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등, 자극적 흥밋거리 취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출범한 현 정부는 성차별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예산을 없애고 실행 체계를 무력화하고 있다. 다층적 폭력 상황에 놓인 여성 피해자를 섬세하게 돌보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이번 예산 삭감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는 여성의 일상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정책적 보호가 약화되는 가운데 가해자들의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구조적 맥락을 바라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평등 정책 후퇴라는 정부의 신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양산하게 되는 문제를 언론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의제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