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정말 노래를 좋아하는 듯하다. 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흔히 보는 게 가수 오디션이다. 게다가 다 죽어가던 어떤 보수 방송의 연예 분야가 트로트 가수 오디션을 통해서 기사회생하자 그에 질세라 몇몇 방송들이 기를 쓰고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런저런 음악 오디션에 참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몇십만명을 넘어선다니 애청자들까지 합치면 한국인들 몇백만명이 가수 뽑기에 몰입하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6·25전쟁 때도 남북한 군인들이 낮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도 밤이면 맹렬하게 가무를 즐겼다는 증언을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이 과연 단순히 노래 사랑, 가수에 대한 열광에 그치는 것일까 하는 질문, 또한 이런 몰입에 신나는 박수만을 쳐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음악 오디션은 학맥, 인맥, 정치적 사회적 ‘빽’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심사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은 공정하게 심사하려 하고 애청자들도 주관적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가수가 다르긴 하지만 최종 결과를 놓고 시비를 심하게 걸지는 않는다. 오디션이 나름대로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가수 오디션은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공 혹은 실패가 개인의 실력이나 노력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음악을 넘어서 전체 사회적 차원에서도 ‘무한경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대체로 승복하게 된다. 오디션이나 신문 박스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는 초점을 개인에 맞추고 사회경제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 및 사회상층부의 지배와 권력 독점이 정당한 것이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생산/재생산한다. 최근 몇년 유행하는 개념을 빌리면 ‘능력주의(meritocracy)’가 한국 사회에서 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 한 개인의 성공은 그 사람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는 사고방식 말이다.

최근 극성을 떠는 학벌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능력주의의 한 모습이다. 최상위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고 그들의 ‘승리’는 부단한 노력의 당연한 결과라는 인식 말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유명대에 들어가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알아주지 않는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란 무엇인가? 냉정하게 해부해보면 그것은 부모(요즘은 조부모들까지 포함)가 제공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돈, 네트워크(연줄), 문화적 소양이 뒷받침되는 사람과 그것이 극심하게 부족한 사람 간의 격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출발선이 같으니 평등하고 따라서 결과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쪽은 최신식 운동화, 전문가의 체계적인 지도로 무장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맨발에 아무런 조언이나 사전 트레이닝 없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이길까? 답은 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조건보다는 노력과 재능의 문제로 오인하면서 승리와 패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세습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를 좀 더 나은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사실은 능력 안에는 이미 세습적 요소가 들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이미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상당히 내면화하고 있어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과 지배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한 예로 국회의원을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선출하는 선거 경쟁에서도 사람들은 ‘명문대’ 출신을 매우 선호한다. 높은 수능 및 내신 점수와 정치인의 유능함과는 별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21대 국회의원 중 SKY 출신 비율은 37%, 20대 국회에서는 SKY 비율이 47.3%!).

가수 오디션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다. 물론 과도한 경쟁 속으로 참가자를 몰아넣어 시청률을 높이려는 전략은 문제가 있다. 예술 관련 오디션에서는 다른 분야보다 ‘재능’이나 ‘끼’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가수 오디션과 일반 분야에서의 사회적 경쟁은 성격이 아주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계가 아니라 한국 정치/사회까지 오디션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본다면 특정 집단의 부당한 지배를 벗어나기 힘들고 엘리트들이 누리는 특권 구조는 은폐되기 마련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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