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 콤플렉스’

2024.04.22 20:44 입력 2024.04.22 20:46 수정

문학평론가/불문학자 고(故) 김현(1942~1990)은 ‘새것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제시한 적이 있다. 새것이라면 무조건 바로 수용해버리는 한국 사회의 풍토에 대한 지적이었다. 테크놀로지건 학문적 경향이건 문화이론이건 새로운 것이라면 별다른 고민이나 성찰 없이 즉각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자생적인 근대화에 실패하고 외부의 힘으로 식민화된 처지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서구의 기술산업 문명, 좁게는 일본을 통해서 이식된 외국의 문물에 대한 ‘자발적인’ 감탄과 자조적인 자기비하가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 선구적인 ‘조선’ 지식인들은 서구/일본 제국주의의 자장 안에 흡수되면서 오래된 것, 낡은 것, 전통적인 것은 모두 버려야만 우리가 근대국가 및 근대인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새것 콤플렉스’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압도적인 경향이 아니다. 낡은 것, 오래된 것을 중시하는 흐름도 있고 서구 중심적 이론에 맞선 탈식민주의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에 22대 국회의원 선거 전후를 보면서 이 개념이 계속 떠올랐다. 정치에서도 ‘새 인물 콤플렉스’가 문화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지 않는가? 한국 시민들은 대체로 닳고 닳은 정치인들을 싫어한다. 4선급 정도의 국회의원들, 중진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노회한 정객, 정치공학이 빼어난 정치인들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정치권에서도 ‘새 인물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정치혐오가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강조했지만, 정치는 더럽고 분열적이고 이전투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정치인은 부패하고 타락한,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래서 비정치권으로부터 이미지가 깨끗한 새 인물, 스펙 좋고 ‘참신한’ 사람을 발탁하는 게 선거철에는 유행처럼 번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반적인 인식에 대하여 철저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로서 외부로부터 정치권에 하루아침에 수혈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오염이 전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명은 최고권력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벼락스타가 되었다(물론 이회창 후보는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후 대선후보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머지 두 명과 좀 다르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용산 권력에 대해서 제대로 각을 세우지는 못했다. 세 명 모두 정치력은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나는 더 이상 하루아침에 ‘정치 신인’이 정치권의 최정상에 오를 수 있는 한국의 정치적 풍토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것은 공동체의 운명을 초보 운전사에게 맡기는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신인들의 긍정적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로부터 대표성 및 윤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비정치인들을 영입하는 것, 특히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대표성을 띤 인물이 각종 의회, 지방자치단체장, 국회 등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선진 정치의 당연한 요구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갑자기 정치신인이 등장해서 제대로 검증도 못 받고 요란한 박수를 받으면서 정당이나 행정부의 최고 지도부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정치와 관련 없는 사람이 갑자기 대선주자급의 인물이 되는 것은 여야 정당, 언론에도 책임이 있지만 결국은 유권자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정치 밥을 먹으며 수련하고 정치권에서 좌절과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로서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나는 ‘준비된’ 정치인이라 부른다. 그 반대는 협상과 타협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고 자신의 좁은 세계관(이념 포함)을 토대로 아집과 독선을 일삼고 경쟁적 세력 및 시민들의 비판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며 그들에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정치인들이다.

나는 보수/진보를 떠나서 유연하며 철저한 현실주의자, 그러면서도 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사람, 즉 ‘준비된’ 정치인을 지속해서 보고 싶다. 한국 시민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더는 갈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초인’이나 ‘참신한’ 지도자를 찾는 대신 정치적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정치인들에 주목하고 싶다. 그들은 이미 우리 옆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특정인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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