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2024.02.07 19:56 입력 2024.02.07 19:58 수정

‘살린다, 살린다…’. 흘러내리는, 무너져 내리는 흙덩이를 뭉개지 않는다, 두 손으로 끝까지 일으켜 세운다. 그릇으로, 화병으로, 찻잔으로 살려낸다. 허물어지려는 흙덩이를 소롯이 살려내는 건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물레가 아닌 손작업을 주로 하는 데다, 가볍지만 내구성 강한 도자기를 추구하고 빚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시킨 도자기가 진열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는다. ‘매일 보고, 매일 쓰는 것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도자기를 사람들이 아낌없이 보고, 아낌없이 쓰기를 바란다.

‘받아들인다’. 나무가 깎아서 없애는 작업이라면, 흙은 더하는 작업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번번이 창작자의 의도를 벗어나거나 배반한다. ‘불’의 개입과 역할이 커서다. 실망과 아쉬움을 주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인다. 깨뜨리지 않는다.

박현원 도공(1958년생)의 ‘받아들임’은 도공의 길을 걷기 이전부터 시작된다. 중학교 1학년 때 등록금을 못 내 퇴학 처분을 당한 그는 어망 만드는 공장에 다니며 가장 역할을 한다. 일당 100원. 쌀 한 말이 500원이던 시절이다. 중학교에 재입학을 못하고 백사마을 천막학교(청암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간다. 불암산 자락 104번지에 자리해 백사마을로 불리는 그 마을은 1960년대 말, 정부가 도심 정비를 목적으로 용산, 남대문, 종로 일대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오갈 데 없어진 철거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달동네. 그때도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돼 급사로 일하며 공부를 계속한다. 신일선풍기와 (악기들을 너무 만져보고 싶어 들어간) 삼익악기 등을 성실히 떠돌던 그는, 마침내 운명의 정수직업전문학교(현 한국폴리텍대학) 도예과에 입학한다. 그때 나이 스물셋. 도예기능사 자격을 목표로 “작가라기보다 도공으로서의 길을 끝까지 가겠다”고 다짐하고 노트마다에 ‘박도공’이라 쓴다. 졸업 후 도예가들 밑에서 조수로 일하던 그는 서른두 살에 자신의 작업실을 내고 자신만의 생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서른네 살에 선윤씨(1966년생)와 결혼, 원주에 새 작업실을 마련한다. 한 달 내내 만든 생활 도자기들을 티코에 싣고 원주에서 출발해 홍천으로, 춘천으로, 추곡으로, 양구로, 삼척으로 유랑하듯 팔러 다닌다.

‘일심불란(一心不亂)’. 박 도공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40년이 된 그의 취미는 낚시. 어망 만드는 공장에 다닐 때 재미를 붙인 낚시가 인생 취미가 됐다. 고립감(고독감)을 즐기는 그는 9년 전부터 일본낚시를 한다. 낚싯대를 여러 대가 아닌 하나만 놓고 하는 낚시가,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며 삼매에 빠지는 과정이 좋아서다. 가는 낚싯줄이 미동할 때 손에 느껴지는 섬세한 떨림이 매력적이서다. 낚시를 갈 때 그는 일부러 낚싯대를 한 대만 가지고 간다. 낚싯대가 여러 대면 낚싯대를 바꾸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며, 하나로 평온히 흐르던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산란히 흐르기 때문이다.

‘기다린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그는 기다린다. 낚시를 하는 동안에는 물 앞에서. 빚은 흙덩이가 스스로 모양을 잡으며 굳는 동안에는 흙 앞에서, 그 흙덩이가 구워지는 동안에는 불(가마) 앞에서. 얼마나 만족스러운 도자기들이 나올지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기다리는 초월의 기다림이다.

‘놓아준다, 놓아둔다’. 그가 잡는 물고기의 종류는 붕어. 그는 붕어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럼 재미가 없다. 그리고 잡은 붕어들을 전부 도로 놓아준다. 그러기 위해 무미늘을 쓴다.

그는 자신의 ‘받아들임’의 자세를 ‘체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의 체념은 ‘끊어내는 것’. 욕망을 부추기고, 잡스러운 생각을 일으키며, 내적 평화를 뒤흔드는 일체의 것들을 과감하게 떨쳐내는 것이다. 그의 체념은 그러므로 ‘고통, 잡념, 연연, 괴로움, 슬픔’을 잘라내고 도달한 순도 99%의 자기 방생(놓아줌이자 놓아둠)이다.

박 도공의 원칙은 ‘초심을 잃지 말자’. 그의 초심은 양심. “가격은 행위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가격을 속이지 말자.” 초심을 잃으면 ‘스스로 흙을 놓을 것’이라고, 그는 묵직하면서도 소탈한 목소리로 말한다. 구름처럼, 꽃잎처럼 가벼운 그의 도자기들은 일심(一心)의 성취이다.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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