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순례

2024.03.14 20:13 입력 2024.03.14 20:19 수정

인스타그램 시대다. ‘인스타그래머블하다’라는 말도 흔하게 쓸 정도다. 이 앱은 보여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자신의 삶을 다른 이에게 중계하도록 한다. 내일 인스타그램에 올릴 이벤트를 기획하는 게 삶의 일부인 사람도 있다. 삶의 여러 방식을 바꾸고 있다. 블로그가 한창일 때도 그런 면이 있었지만 ‘모바일한’ 스마트폰과는 물리적으로 다른 토대였다. 컴퓨터는 앉아서 켜고, 해당 블로그에 들어가야 볼 수 있었다. 일종의 동시성이 떨어지고 접속 시간도 적었다. 이제는 다르다.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늘 켜져 있는 스마트폰으로 접속하고 본다.

성지순례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것도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시대의 일부다. 인기 있는 장소를 탐방하고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은 더 세분화되는데, 그중 하나가 ‘빵지순례’다. 유명한 빵집을 다니고, 줄 서고, 먹고, 찍어 올린다. 빵은 성지순례에 아주 적합하다. 우선 싸서 비용이 적게 든다. 설사 먹어보니 맛이 없어 실패하더라도 큰 손해가 아니다. 모양도 예쁘고(그래서 더 예쁜 빵을, 더 ‘쇼킹한 비주얼’의 빵이 기획된다) 먹는 음식 특유의 반응을 빨리 얻을 수 있다. 팔로어들은 음식, 빵에 좋아요를 제일 많이 눌러주니까. 우리는 지금 늘 허기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먹어서 혈당을 올리고 기쁨을 주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이 빵을 처음 본 것은 청나라 시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신으로 청을 방문한 이들이 서양인이 보급하기 시작한 빵을 먹어봤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천주교 세력은 아시아 포교에 공을 들였다. 그래서 아마도 그때 빵은 카스텔라가 중심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나중에 우리는 카스텔라를 본격적으로 먹게 된다. 일본이 천주교 세력과 만난 나가사키에서 번성한 카스텔라는 나중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크게 퍼졌다. 카스텔라는 유럽에서 창안된 부드러운 케이크의 일종이었다. 달걀, 설탕, 밀가루는 그렇게 세계를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빵은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쓰던 말은 아니었다. ‘양떡’이라고 부르다가 점차 포르투갈 말인 ‘팡’, 즉 빵이 되었다. 만약 영국 세력을 통했더라면 브레드가 되었을 것이고, 이탈리아였다면 파네라고 불렸을 신문명이었다. 우리는 곡물을 찧어서 시루에 넣어 떡을 만들었고, 유럽은 부풀려서 오븐에 넣어 구웠다. 빵은 실제 곡물의 양보다 크게 보이는 게 특징이다. 부풀면서 공기층을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씹히고, 크기도 컸다. 게다가 설탕과 함께 퍼지면서 단맛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빵이 당대에 한국인의 주식이 된 것도 이런 강렬한 개성 덕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국 빵값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뉴스도 눈에 들어온다. 어떤 통계는 우리 빵값을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은 63이라고 쓰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나라다. 밀가루 뒤집어써가며 빵 만드는 이들은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말이다. 임대료 때문이라는 말도,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빵집 시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빵값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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