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요리만큼이나 중요한 디저트

2024.03.28 21:57 입력 2024.03.28 22:03 수정

플랑(Flan)의 맛이 궁금했다. 플랑은 ‘프랑스 국민 디저트’로 불리는 프랑스식 에그 타르트다. 타르트 반죽에 우유, 설탕, 바닐라빈 등을 넣은 계란혼합물을 채워 오븐에 굽는다. 포르투갈에서 시작한 에그 타르타가 프랑스로 전해지면서 프랑스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에그 타르트보다 훨씬 크고 충전물이 폭신하다.

평소 계란 노른자향이 강해 에그 타르타를 그다지 즐기지 않던 내가, 플랑을 사려고 서울 강남의 백화점 지하에 문을 연 ‘밀레앙’까지 찾아간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 6구에 있는 빵집(블랑제리) 밀레앙은 한국인인 서용상 셰프가 운영한다. 그는 ‘디저트의 제국’ 프랑스에서 프랑스제과제빵협회가 1년에 한번 여는 2023년 플랑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 오전 밀레앙이 위치한 신세계 강남점 지하는 인산인해였다. 신세계가 지난달 중순 강남점에 문을 연 5300㎡(약 1600평) 규모의 43개 디저트 매장으로 구성된 ‘스위트파크’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결국 나는 플랑 구매를 포기해야 했다. 나흘 뒤인 목요일, 근처에 약속이 있어 재도전 끝에 플랑을 샀다. 그런데 한 개에 1만3000원. 보통 에그 타르트에 견주면 4~5배의 가격.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앙의 플랑 맛은 의외로 담백했다. 계란 냄새도 안 나고 바닐라빈을 쓴 커스터드도 쫀득했다. 검은깨를 넣은 한국식 플랑도 맛났다. 흑임자 플랑은 한식의 변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영감을 주는 레시피였다. 비쌌지만 만족감이 들었다.

나는 디저트가 메인 요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본다. 디저트가 어떤 요리보다 창의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디저트 문화가 서양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5성급호텔이나 미슐랭 레스토랑의 디저트는 만찬의 정점을 찍기엔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평범한 제과점의 초코케이크만도 못한 디저트를 내놓는 무성의한 곳도 봤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현지 레스토랑 디저트를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기상천외한 것들을 내놓는다. 디저트가 주는 쾌감은 어떤 요리보다 커 디저트를 먹을 때 행복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나온다는 연구도 있다. 특히 단맛에 민감한 여성들에게 디저트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신세계의 국내 최대 규모 디저트 매장은 일단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다이닝 문화가 성장기를 넘어서 성숙기로 넘어가는 변곡점쯤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새로움이 없는데도 그저 가격만 비싼 수입 디저트는 그저 과시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또 이런 고가의 디저트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을 무력화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는 역사적으로 과시와 역치 이상의 자극에서 시작된다. 차와 초콜릿도 그랬다. 누구도 이제 음식을 단순한 칼로리 건전지쯤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음식은 SNS를 통해 자아를 불특정다수에게 확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알록달록하며 전 지구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디저트는 ‘미식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스테이크쯤은 가볍게 따돌리고 그 수단의 꼭짓점에 올라가 있다. 디저트 트렌드를 눈여겨봐야 하는 까닭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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