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가 싸움뿐인 총선, ‘공약’ 경쟁이 사라졌다

2024.04.04 20:36 입력 2024.04.04 20:38 수정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한번 바람을 타니 파도가 되어 배를 뒤집어엎을 기세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를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집권 여당의 기세가 총선을 코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총선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불과 몇 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인정했다. 강물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배가 가라앉게 된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엄중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민심에 반하는 인사권 행사로 유리하던 여론 지형에 변동이 생겼다.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 당시 국방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을 거란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추진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종섭 사태가 민심 흐름을 바꿔 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식, 법치와 정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국민 대다수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직권남용 핵심 피의자를 공직에 임명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가.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이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이종섭은 피의자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러니 대사 임명에 법적 하자는 없다, 대사직을 수행하려면 출국해야 하니 규정과 절차에 따라 출국 금지를 풀면 된다. 그렇다. 법적 관점에서는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은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야당 대표도 피고인이지만 무죄추정을 받는데 정치적 대화 상대로 여기지도 않고 파렴치범 취급하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일반적으로 출금된 피의자가 출금 해제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데 법 앞에 평등한가. 피의자로 수사받는 자가 일반 시민이라면 공직에 임명될 수 있겠나. 법률가는 절차의 공정, 법과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 적법 절차와 방어권 보장,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졌다면 공정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민이 인식하는 공정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다차원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워야 한다.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 공정이기 때문에 과정의 공정보다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에 방점을 찍는다. 절차와 과정에 위법이 없고 공정했다고 할지라도 기회가 평등하지 않으면 그리고 나타난 결과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되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정이 화두다. 공천 과정에서 탈락 기준이 되기도 하고 전격 공천취소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 공정성으로 한 방 먹은 여당도 야당 후보의 불공정성을 드러내 만회해 보려 애쓴다. 그 핵심에 다수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가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불공정하게 부동산을 취득한 야당 후보가 공격 대상이다. 편법 대출, 꼼수 증여, 투기성 주택구매, 갭투자 등이 공정하냐는 비판이다. 불법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으니, 결과도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성이 늘 화두가 되고 공정과 상식이 국정철학인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증거다. 법 집행, 소득과 재산 분배, 취업 기회, 입시 제도 등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영역이 쌓여 있다. 공정경쟁의 필수조건인 법 앞의 평등, 기회의 균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다. 이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 경쟁해야 할 총선에서 여야 모두 누가 더 불공정한가를 드러내고, 막말과 상대편 흠집 내기를 주고받는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정이 총선의 화두이자 표심의 향방을 결정할 요소로 떠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는 이미 불공정하다. 여성, 성평등, 범죄 피해자, 사회적 취약계층 복지, 인구, 기후 위기와 에너지 등 여러 의제에 대한 공정한 정책대결의 장이 펼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년을 기다린 유권자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또 경험하고 있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고려대 명예교수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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