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은 국민의 대표다

2024.06.02 20:52 입력 2024.06.02 20:54 수정

국회의원은 당원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다. 당파적 이해를 넘어 “국가 이익을 우선해 직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헌법기관의 대표로서 국회의장을 선출한다. 그렇게 선출된 국회의장은 특정 이해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당적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당연한 얘길 늘어놓는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최근 ‘당원 주권시대’를 선언하며 당원권 강화의 일환으로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당원 투표를 반영하도록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의회 대표로서 국회의장을 특정 정당의 다수가 뽑게 되며 당심에 복무하는 당파적인 국회의장이 제도로서 용인된다. 헌정주의에 대한 위협임과 동시에 민주주의 규범의 파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 곤란한 것은 당원권 강화라는 방향의 기저에 깔린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 있다. 그것은 당원이나 국민의 다수 여론이 각각 당심과 민심이며 이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민주성을 구현해낸다는 것이다. ‘당원권 강화’라는 하나의 사건 뒤에는 다수의 뜻이 항상 진리에 가까울 것이라는 착각이 놓여 있다.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의 우위라는 인식도 있다. 우리 정치에 만연한 대표 불신이나 대표성의 위기, 기속위임과 자유위임 간 긴장 등을 고려하더라도, 만약 다수의 의지를 대리하여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라면 우리는 모든 사안을 다수결로 정하고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결국 이러한 민주당의 시도는 정당민주주의 강화와는 전연 무관한 당내 민주화 서사에 가깝다. 당내 기득권 세력(반민주)에 의해 위협받는 민주당을 ‘깨어 있는 당원’ ‘행동하는 당원’이 나서서 지켜내는 쟁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여기서 기득권 자리를 점유한 것은 ‘수박’ ‘대의원’ ‘협치’ ‘자제의 규범’ ‘내부 총질’ 등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민주화 서사에 기반한 당내 투쟁은 정당민주주의, 즉 당내 다양성이나 숙의나 토론 강화 등을 억압한다. 더욱이 ‘인민의 직접 통치’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명분으로 당원권을 강화하고 이를 당내 투쟁이나 당론 결정에 동원·활용하면, 극단적 소수 몫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져정당 내 민주적 토대는 붕괴할 것이다.

22대 국회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 정치에 본격적인 ‘포퓰리즘 국면’이 도래했다는 듯 “당원들이 움직이면 그 자체가 집단지성” “대중이 정당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선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거대 양당은 지지 대중 뜻을 앞세우며 각각 재의요구권(거부권)과 검사·장관에 대한 탄핵의 적극 활용을 공언했다. 이에 따라 두 정당 간 정면 충돌의 빈도·강도가 모두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젠 정치만큼 시민들도 주어진 권한 남용과 최대치 활용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번 무너진 가드레일은 다시 세워지기 어렵다. 22대 국회는 입법활동 역할에만 머물러선 곤란하다. 예외적 수단이 일상적으로 행사되는 정치의 붕괴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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