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위험의 이주화’ 멈춰야

2024.06.02 20:58 입력 2024.06.02 20:59 수정

2023년 BTS의 팬덤 ‘아미’는 10주년 페스타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40만명의 글로벌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각 부처에 안전관리를 긴급 지시했다. 많은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와 더운 날의 온열질환 대비,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된 안전방송과 표지판 등을 주문했다. 다행히 축제는 즐거웠고 안전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조선소는 오랜 불황이 끝나고 호황이 시작됐다. 그러나 불황 시기 강제로 ‘정리’되거나 저임금 하청구조와 위험한 현장을 못 견디고 ‘떠난’ 하청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호황 국면에도 저임금과 하청구조, 위험한 작업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기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조선업 ‘활황’에 부족한 인력 1만4000여명 중 1만2000여명(86%)이 이주노동자로 채워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조선소는 글로벌 저임금 노동력을 단기간에 빨아들였다. 2021년 3000여명을 시작으로 매년 2배씩 증가했다. 유입국가는 40개국을 넘어서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조선소 상생협의체’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이나 관계 장관 누구의 입에서도 글로벌 팬덤만큼 많은 국적의 노동자가 위험한 조선소에서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는지를 고려한 이주 고용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조선소의 안전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조선소 노조 활동가는 “산재사고가 작년보다 3배 늘어났다”면서 “이주노동자가 단독으로 작업에 투입되는 내년쯤, 사고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인 작업반장에 각국의 이주인력으로 채워지는 작업조에서 소통은 그 옛날 <가족오락관> 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을 방불케 한다. 해당 국가에서 사용되는 언어만큼 안전표지판이나 안전방송, 통역사가 배치되지 않는다. 가령 한국인 작업반장이 ‘보디랭귀지’를 섞어 전달하면, 그나마 한국말을 조금 아는 러시아 노동자가 영어로 인도 노동자에게 전달하고, 인도 노동자가 번역기로 네팔 노동자에게 ‘작업지시’를 전달하는 식이다. “베트남 노동자에게 ‘이곳은 작업중지 구역입니다’를 번역기로 돌려서 보여줬는데, 못 알아듣는 거 같았어요. 베트남말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하니까 ‘작업을 하세요’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답답하죠.”

여러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조선소에서 ‘소통’은 안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가뜩이나 취약한 소통구조에 40여개국 언어까지 더해져 작업장의 위험을 해결 불능 상태로 만들고 있다. 위험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까지 필요한 것이 정부와 기업의 ‘작업중지 의무’이자,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다. 조선소가 40여개국의 언어와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상태인지 점검해야 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식의 이주노동자 투입을 중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고요 속의 외침’이 되지 않도록 그들의 권리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또한 원청기업이 원청노동자를 비롯해 하청·이주노동자의 위험을 소통할 수 있도록 ‘원·하청·이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추방과 배제 대신, 공존을 위한 안전이 ‘위험의 이주화’ 해법이 되어야 한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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