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난 ‘뽕짝가수’가 아닙니다

2004.12.01 17:32

〈나훈아 아리랑 소리꾼〉

“‘아리랑 가수’라 불러 달라. ‘아리랑 소리꾼’이면 더 좋다.”

긴 세월 전통가요를 불러온 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뽕짝’이나 ‘트로트’라는 호칭은 하루 빨리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훌륭한 국어학자가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들은 전통가요의 이름을 짓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의 이름을 짓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 이름이 순수한 우리말이어야 하기에 더욱 어렵다. 뽕짝이나 트로트가 아닌 ‘아리랑’으로 부르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우리 전통가요를 ‘뽕짝’이나 ‘트로트’로 칭하면 안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뽕짝’이라는 것은 4분의 2 박자 리듬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떤 다른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 ‘전통가요’ 한글작명 필요 -

또 그 어감도 전통가요를 깔보는 느낌이 강하다. ‘트로트’의 어원인 영어 ‘Trot’도 역시 4분의 2 박자를 뜻한다. 더구나 외국어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호칭으로 사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전통가요는 4분의 2 박자는 물론 모든 리듬을 폭 넓게 사용한다. 결국 특정 박자를 지칭하는 ‘뽕짝’이나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좋을까.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전통가요가 있다. 미국의 팝,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 일본의 엔카 등이 그것이다. 만약 외국인이 “당신 나라의 전통가요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라고 물을 때 “뽕짝입니다” “트로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전통가요를 지칭하는 단어로는 ‘아리랑’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왜 ‘아리랑’인가. 일단 ‘아리랑’이라고 하면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노래’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노래가 자그마치 6,000여곡이나 된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뜻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정확한 뜻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어느 학자는 뜻을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음악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흥을 돋우는 무의미한 사설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해석을 떠나 ‘아리랑’의 쓰임새를 보면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아리랑’은 일제에 항거하는 노래였다. 독재 시대엔 운동권의 노래였다. 88올림픽 때 공식음악으로 지정돼 지구촌 곳곳의 안방까지 전파를 통해 울려퍼졌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단일팀의 단가로 채택돼 남과 북이 함께 불렀다.

옛적부터 농부나 어부할 것 없이 우리 서민들의 노래였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통일 후를 생각해도 우리의 ‘아리랑’은 남과 북에서 뜻을 같이하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노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은 “슬플 때 만지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만지면 기쁨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의 얼이며 기쁨인 동시에 한(恨)이다. 우리말 중에서도 가장 멋진 말이다. 우리가 이런 ‘아리랑’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면 어떨까. ‘아리랑’을 가수나 소리꾼 등 음악과 관련된 단어의 앞에 붙여 전통가요, 한국가요, 성인가요의 뜻으로 쓰자는 것이다. ‘뽕짝 가수’ ‘트로트 가수’를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으로, ‘가요무대’를 ‘아리랑 무대’로, ‘전국 노래자랑’을 ‘전국 아리랑 노래자랑’으로 부르자.

- 우리 얼과 恨 ‘아리랑’으로 -

그러면 어느 외국인이 물었을 때 “우리의 전통가요는 아리랑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흥얼거리며 부른 우리 전통가요의 이름을 ‘아리랑’이라고 칭한다면 얼마나 잘 어울리겠는가.

주장이 그리 논리정연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평생을 전통가요를 노래한 충정과 사명감, 책임감에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다. 앞으로 나훈아와 뜻을 같이하셔서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에 힘을 모아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소주 한 잔에 아리랑 얘기를 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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