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숭례문을 다시 우뚝 세운 장인들의 땀방울

2013.05.06 21:57
박언곤 | 숭례문 복구자문단 단장

절치부심의 나날이었다. 화마에 훼손된 숭례문을 복구하기 위한 복구자문단의 단장 겸 기술분과 위원장을 맡은 이후 5년이 그랬다. 숭례문 문루의 기왓장이 무너져내릴 때 억장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쓰러진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일은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최대한 전통방식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다. 현대식 장비와 기계를 쓰면 1~2년 안에 뚝딱 복구하는 게 가능했겠지만 전통방식을 고수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공사에 참가한 장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우선 옷부터가 그랬다.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한겨울 삭풍에도 장인들은 전통복식을 입고 작업했다. 기본적인 안전장비 외에는 모든 것을 전통방식대로 하자는 방침을 서로 잘 지키려 애썼다.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겠지만 누구 하나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따라주었다.

[기고]숭례문을 다시 우뚝 세운 장인들의 땀방울

숭례문 기둥과 대들보 등 큰 부재는 수령이 100년을 넘는 국내산 소나무를 썼다. 신응수 대목장을 비롯해 문화재청과 산림청 직원 등이 한겨울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닌 끝에 찾아낸 것들이다.

경북 영덕에 사는 권동충씨는 몇 대를 이어오며 지극정성으로 키운 소나무 6그루를 기증했다. 산림 관계자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좋은 나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영덕군수는 권씨가 쓴 편지를 문화재청에 전달하고, 적극적인 행정지원도 해줬다. 신 대목장을 중심으로 목공사에 참여한 장인들은 나무를 다룰 때 전기톱, 전기대패를 일절 쓰지 않았다. 일일이 손으로 베고 대패, 자귀 등 전통 도구를 사용해 소중히 다듬었다.

성곽 복원에 쓰인 돌들도 와이어커팅 같은 현대적 기술을 쓰지 않고 전통방식 그대로 석공들이 하나하나 쪼고 다듬었다. 말이 전통방식이지 그 크고 많은 돌들을 쓰임새에 맞게 쪼개고, 그걸 다시 정과 망치만로 다듬는 일은 어지간한 노고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이재순·이의상 석장을 비롯한 석공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무뎌진 정을 벼려 가며 쉴 새 없이 돌을 다듬어 성곽을 쌓았다.

문루에 얹은 기와를 만든 한형준 제와장은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조선기와 장인이다. 흙으로 기와를 빚고 말린 뒤 가마에 넣고 불을 때고 다시 식히는 작업을 몇 번씩 반복하는 시간 동안 구순을 바라보는 제와장은 거동이 쉽지 않은 몸임에도 한시도 가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생애 마지막 작품’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기와를 만든 것이다. 문루에 2만4000장의 기와를 얹은 이근복 번와장은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달음에 달려와 다음날까지 12시간이나 우두커니 서서 그 자리를 지켰다. 이 번와장은 숭례문 복구공사 참가가 결정되었을 때 숭례문이 ‘1000년이 가는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리라’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홍창원 단청장도 있다. 홍 단청장은 숭례문 복구공사를 위해 무려 3년 동안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고 연구했다. 단청 작업에는 연인원 1500여명의 장인이 참여했다. 신인영 대장장이를 비롯한 250여명은 온갖 철물들을 전통 대장간을 직접 운영하며 만들어냈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쓰인 철물량만 해도 31종에 3만7000여개에 이른다.

숭례문이 쓰러졌을 때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해외 동포들은 7억원이나 되는 성금을 모아줬다. 이제 숭례문은 5년3개월 만에 복구됐다. 이번 복구공사에서는 연인원 3만5000명의 장인이 비지땀을 흘렸다. 이제, 그들의 정성과 노고를 잊지 않고 다시 선 숭례문을 소중히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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