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의 민낯, 광주

2014.07.01 20:39 입력 2014.07.02 20:11 수정
최상명 | 우석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세상읽기]새정치의 민낯, 광주

세월호 참사 77일이 흘러가고 있다. 분노한 국민들은 모든 불의와 부조리의 혁파를 원했지만 6·4 지방선거는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절묘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그 결과를 말해 주고 있지만, 이는 여야 모두 국민들로부터 불신받고 있음의 방증이다. 반면 교육감선거는 소위 진보교육감들이 전국을 휩쓸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6·4 지방선거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대결이 아니었다. ‘변화’가 화두였다. 전국에서 변화의 물결이 지역과 이념, 보수와 진보의 기득권들을 응징했다. 진보교육감들은 진보라 당선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변화’로 보였기 때문에 당선됐다.

(여권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선거와 달리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6·4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지 못했는가? ‘변화’를 보여줄 ‘새정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공천과 선거전을 주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당의 유산과 강고했고, 안철수 세력과의 ‘연합’은 흡수 수준으로 이뤄졌지만, ‘새정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 ‘새정치’라는 당명을 홍보한 것이 고작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변화의 쓰나미였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큰 그늘이었다. 그 그늘에 가려 대통령과 여야의 민낯이 선거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이제 숨을 그늘도 없고 눈물의 약효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방심하면 당한다.

가장 방심한 대통령이 먼저 당했다. 부산, 경기, 인천에서 겨우 승리한 대통령은 ‘겨우’가 아니라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 국가개조를 외치며 불통과 오기로 총리를 지명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지명자마다 낙마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표를 낸 총리를 유임시킴으로써 세월호 이전으로 회귀했다. 이로써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사람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의 민낯을 들켰고, 국가개조가 국가후퇴가 될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말았다. 세월호라는 국가재난도 이겨냈던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로 급락했고 벌써 레임덕이 회자되는 처지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가. 대통령의 실정과 전당대회 중인 새누리당의 분열에 취해 방심하고 있다. 7월 재·보궐선거에선 거물급 정치인들의 이름이 온갖 명분으로 치장돼 계속 거론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거물들의 나눠먹기 밀실공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거물들의 이름이 광주 등에 언급되는 것 자체가 ‘새정치’와 광주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오래전부터 민주개혁진보세력의 민낯은 광주였다. 2002년 노무현을 선택한 것도 광주였다. 6·4 지방선거에서 윤장현의 승리는 ‘새정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통합’을 인정한 것이었다. 7월에는 ‘새정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새정치’를 말하긴 쉽다. 그러나 믿게 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국가개조’가 진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창극씨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진심조차 부정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새정치’가 진심이라면 7월 광주를 새 인물들의 향연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4월16일, 세월호 침몰과 참사는 대한민국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지금 선원들은 재판을 받고 있고, 회사의 실소유주는 검경에 쫓기고 있으며, 해경은 해체가 선언됐다. 7월30일, 광주는 ‘새정치’의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이 치부가 될지, 감동이 될지 결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호에 기적은 없었다. 그토록 기적을 염원하던 시간이 11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6·4 지방선거에 ‘새정치’는 없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끝까지 기억하고 기다릴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만큼 간절한 것이 ‘변화’와 ‘새정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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