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정수 헌법재판관을 추모하며

2017.11.07 21:28 입력 2017.11.07 21:29 수정
이석연 | 변호사·전 법제처장

지난 5일 변정수 초대 헌법재판관(재임기간 1988~1994)이 타계하셨다. 나는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5년간 변 재판관을 보좌했다. 변 재판관과의 만남은 법조인으로서 오늘의 내 삶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하는데 깊은 영향을 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공권력 남용에 맞선 투쟁정신 등이다. 더 나아가 재판은 건전한 상식과 순리에 입각한 단순 명료하고 간단 명쾌한 것이어야 당사자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 논리적이고 현학적 법리에 입각한 재판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역시 그의 지론이었다.

[기고]변정수 헌법재판관을 추모하며

변 재판관은 한국의 올리버 웬들 홈스다. 홈스는 ‘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라고 주창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대한 소수의견자다. 많은 학자들은 그가 재임 중 낸 60여 건의 소수의견과 20여 건의 위헌결정이 오늘의 헌재 위상 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첫 위헌결정으로 검찰권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가능하게 했으며, 대법원 규칙인 법무사법시행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으로 헌재와 대법원의 관계 정립뿐만 아니라 법률의 하위 법령에 대한 헌법심사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위 대법원 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이 나오기까지 주심인 변 재판관이 겪었던 고초는 재판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그의 불굴의 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변호인이 구속 피의자, 피고인을 만날 때 교도관이 입회하여 대화 내용을 적고 사진 찍는 관행을 없앤 것도 그의 공로였다. 억강부약(抑强扶弱), 즉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하는 자세와,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 권력에 우선한다는 그의 일관된 헌법관은 후학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허약한 체질에다 잔병이 많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평생 병에 시달려 왔다. 마음도 몹시 약하고 눈물이 헤프다. 마음은 너그럽지 못하고 소심하다. 사교는 즐기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에 말도 잘하지 못한다. 머리의 회전도 느리다.’(변정수 회고록, <법조여정> 중에서)

참으로 겸허한 자기 성찰이다. 곁에서 지켜본 그는 다정다감하고 인정이 넘쳤다. 약자를 편들고 강자를 싫어했다. 고집은 세지만 옹고집은 아니었다. 합리적인 논거와 이유를 제시하면 자신의 주장을 시정하였다. 책임감이 강하고 돈보다 명예를 중히 여기고, 항상 검소한 생활태도를 잃지 않았다. 농촌 풍경, 특히 논두렁, 밭두렁을 너무 좋아한다고도 했다.

그가 낸 소수의견은 대부분 8 대 1의 외로운 길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재판관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연구관한테 이런 얘기는 안 해도 되는데….” 평의를 끝내고 종종 나를 불러 한 말씀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인간적인 외로움을 감내했다. 퇴임 후에는 장관급 공직자에게 의례적으로 주어지는 청와대의 훈장 제의를 끝내 거절했다.

그가 개척했던 길은 이제 아름다운 동행이 넘치는 길로 헌법재판사(史)에 우뚝 섰다. 법조인으로서 초입에 그를 만나 엄격한 단련을 거쳤던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회복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는 헌법의 거목을 잃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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