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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북·미 핵협상…한국, 냉정한 ‘촉진자’가 돼야

2019.03.01 21:12 입력 2019.03.01 21:23 수정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기고]갈림길에 선 북·미 핵협상…한국, 냉정한 ‘촉진자’가 돼야

문재인 정부의 시간표가 아닌
변화하는 역내 정세에 따라
다양한 새로운 카드 준비 필요

많은 기대를 모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을 듣자 생뚱맞게도 나는 며칠 전 국내 한 프랜차이즈 음료업체의 젊은 간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확신에 차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자사 브랜드가 출시 후 1차 정점에 이른 뒤 떨어져 바닥을 쳤지만 최근 다시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이제는 안정적인 시장 점유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음료가 처음 한국에 선보였을 때,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빠르게 매출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호기심이 가라앉고 또 다른 경쟁업체들이 나타나자 점차 매출과 매장 수가 줄어들었다. 시장 일부를 반짝 점유했다 사라졌던 다른 유사 상품들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퇴출’과 ‘부활’의 갈림길에서 그 브랜드가 어떻게 다시 부활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핵심은 냉철한 현실 분석이었다. 점유율 1위 프랜차이즈 음료와의 경쟁력 차이를 인정하고 고객들이 어떤 때 1위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자사 제품을 찾는지를 분석했다. 그러고는 1위와 비교하면 비록 3분의 1 정도 시장이지만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음료라는 특유의 이미지와 영역을 만들었다. 동시에 찾아온 고객들에게는 다양한 농도와 당도 선택 및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제공하며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제 북·미 핵협상도 갈림길 앞에 섰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착을 위해 올인하다시피 달려온 한국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상황은 한반도 비핵화 과정의 위기이자 기회이다. 향후 북·미가 상호 불신의 늪에 빠져들면 과거 수차례 기억처럼 대화 국면에서 ‘퇴출’되는 위기에 접하게 된다. 만약 퇴출된다면 다시 대화 기회를 갖기는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반면 북·미 간의 대화가 이어지며 조금씩 진전을 이루어 나간다면 국제사회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부활’에 대한 가능성과 당사국들의 진정성을 더욱 높이 평가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 원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은 우선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은 핵의 비확산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지만 북한이 자국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된다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제가 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안보적 영향력 강화에 대응해 전략적으로 상호협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적극적 견제가 없다면 언제든 북한과의 3국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정세에 개입해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 비핵화 그리고 납치자 문제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의제이다.

한국이 제어하기 힘든 강대국인 이들 네 나라는 물론 체제의 생존까지 걸린 북한은 더욱 철저히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한반도 정세를 바라본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아무리 우리 입장을 끈질기게 설명하고 때로는 감성적으로 다가가도 자국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말을 들어줄 나라는 없다. 더욱이 치열한 미·중의 전략 경쟁구도하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한반도 정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국은 역할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대화 국면 초기 북·미 간 ‘소통자’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북·미 간 대화가 궤도에 올랐기에 한국은 현실적으로 ‘중재자’가 아닌 대화 ‘촉진자’ 역할만 가능하다. 한국은 과거 미국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를 중재할 수 있었던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국의 전략적, 국내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북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대미 카드로 활용하려는 중국, 일본과는 역할이 상당 부분 겹칠 뿐 아니라, 중·일은 중재를 위한 일정 수준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국력과 역할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미 핵협상의 ‘퇴출’과 ‘부활’ 사이에서 정확한 한국의 역할 인식과 이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강대국들의 시각에서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최소한 ‘부활’ 단계로 진입할 때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시간표와 목표가 아닌 변화하는 역내 정세에 따라 북한과 미국 입장에서 바라본 현실적이고 다양한 새로운 협상안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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