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갈라선 게 아니라 합의유예다

2019.03.01 20:34 입력 2019.03.01 20:36 수정

안타깝게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되었다. 지난 30여년간 합의와 불이행을 반복해 왔던 것이 북핵 협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할 수 있지만 이번엔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세기의 담판이었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양 정상이 만남에서부터 성과 있는 회담을 약속하였고 공동만찬 등에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세상읽기]북·미, 갈라선 게 아니라 합의유예다

이번 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다만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이나 이에 대응하여 심야에 이루어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 내용에서 합의무산에 따른 양측의 입장차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의 주장은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한이 제시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는 해제되어야 하지만, 북한이 모든 핵시설을 포기할 때만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제재 해제가 현재 신뢰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일부 제재 해제 등 등가교환 방식으로 미국의 상응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양측의 입장 차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북핵 협상 과정에서 이미 제기되어 왔던 것이며 최근 몇 달간 북·미 간 실무회담에서 계속 논의되어 오던 것들이다. 이렇게 좁혀지지 않는 문제에 대한 타결을 톱다운 방식인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기대하였으나 양 정상 간에도 최종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 합의도출이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핵 협상 결과에 대한 미국 내 언론의 평가와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국내 문제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간에 코언 청문회가 벌어진 것에 대한 강도 높은 불만을 표출하였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된 이후 재선가도에 장애물이 높아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국내정치 상황을 감안하면서 이번 북핵 협상에 임했을 것이다. 북핵 협상의 결과를 두고 미국 내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다면 그 또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대북 제재 해제에 부정적인 미국 내 보수언론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제재 완화라는 스몰딜 형태의 합의문에 대한 집중 공격을 했을 것이다.

영변 핵시설 해체부터 단계적으로 한 땀 한 땀 나아갈 필요도 있는 북핵 폐기 절차들이 여러 가지 정치적 요소에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아쉽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 때문에 우리의 명운이 달린 문제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다.

한편 우리 문제에 대한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문제 해결능력과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되었다.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0년 우리 자주권의 발현인 독립운동정신의 계승을 강조하였다. 지난 100년 역사적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새로운 100년의 질서를 우리가 주도하는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천명하였다. 귀국길에 성사된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지속적인 중재역할을 주문하였다. 이 모든 협상의 프레임이 지난해 문 대통령의 역할에 따라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조속히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미국의 입장을 재차 확인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장 답방이 어렵더라도 특사교환이나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회담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합의문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번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가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양 정상 모두 북핵 문제 협상 타결을 위해 먼 길을 왔다. 협상이라는 것은 한 번에 타결을 이루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세기의 담판이라도 입장차가 좁혀지지 못하면 훗날을 기약하는 것 또한 협상의 과정인 것이다. 양 정상이 합의점 없이 돌아갈 때도 이별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차기 일정은 잡히지 않았고 일정기간 냉각기가 있겠지만 여전히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북·미관계를 예견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고 북한 또한 입장을 밝히되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 대북 제재 강화 등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합의도출이 실패했다고 협상이 완료된 것이 아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양측이 갈라서는 회담결렬이 아니라 합의유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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