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제 시민의회다

2024.05.26 20:32 입력 2024.05.26 20:33 수정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캐나다,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선거제도 개혁, 헌법 개정, 기후위기 대응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일정 기간 숙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을 정부나 의회에 권고하는 시민의회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구성한 제도권 밖 조직이 아니라, 정부나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비용을 들여 장기간 운영한 공적 기구였다.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회입법추진 100인위원회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시민의회를 도입했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당시 주지사를 비롯해 외국 사례 연구자들을 초청해 국제 심포지엄을 최근 개최했다. 한국에서도 추첨을 통한 시민참여단 구성 및 숙의 보장 형태로 2017년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와 최근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시민참여형 숙의 기구가 있었지만, 시민의회와 같은 체계적인 사례가 실질적으로 없다 보니 사회적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시민의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총선에서도 보았듯이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제도 같은 문제를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당에 맡기는 것보다, 성,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임신중지나 프랑스의 안락사 문제처럼 격렬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안도 시민의회에서 다룰 수 있다.

여론조사는 사전 정보 없이 단순 의견만 묻지만, 시민의회는 충분한 정보 제공과 학습을 바탕으로 찬반 입장을 경청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하기 때문에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시민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의회에 권고하고, 국민투표나 국회 본회의에서의 찬반 투표 등 정해진 절차에 따르게 하면 입법권 침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시민의회 구성을 추첨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원하는 사람들로 구성한다면 정파성이 강하거나 이익집단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고, 선거 방식은 기존 의회처럼 정당과 긴밀히 연결된 사람들 위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원이나 선거의 가장 큰 폐단은 ‘편향된’ 시민들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계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추첨이 필요하며, 외국의 시민의회들도 추첨을 전제로 했다.

시민의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2년 후 실시되는 지방의회 선거제도 개혁부터 시민의회 방식으로 운용하고,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확대할 수 있다. 공론화위원회처럼 단기간이 아니라, 캐나다 주정부 사례처럼 충분한 기간을 두고 학습, 공청회,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6공화국 헌법을 개정하는 논의도 시민의회에서 시작할 수 있다. 권력구조와 같은 핵심 이슈에 대해 주요 정당과 일정 수 이상의 서명을 받은 시민단체가 제출한 안건 중심으로 논의해 국민투표에 넘기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외국 사례들이 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헌법 개정 시 양원제를 도입해 선거로 구성되는 국회와 추첨으로 선발되는 시민의회가 서로 역할을 나누게 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7공화국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는 헌법 정신을 시민의회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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