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택배노동자는 아우성인데, 정부 대책은 지금도 멀고 늦다

2020.12.01 20:47 입력 2020.12.01 21:06 수정

택배노동자 10명 중 9명은 하루 10시간 일하고, 그중 4명은 성수기에 14시간을 넘겼다. 주 6일 근무자가 95%이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12%나 됐다. 10명 중 4명은 점심을 건너뛰었다. 성수기에 늘어난 배송물량은 택배노동자 78%가 야간 배달을 통해서라도 혼자 다 마쳤다. 이런 노동의 결과일 것이다. 택배노동자 70%는 지금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했다. 고용노동부가 10월 말~11월 초 조사해 1일 발표한 물동량 상위 4개 택배회사(CJ대한통운·롯데·한진·로젠) 노동자 1862명의 실태 보고서엔 일터의 아우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난달 오전 4시28분까지 일 못 마치고 집에 가며 카톡에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썼던 38세 젊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어떤 일상 속에서 나오고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그 아우성과 정부대책의 간극은 컸다. 현장 노동자들이 요구한 개선사항은 건당 800원 수준인 ‘배달수수료 인상’(31.4%), 하루 5시간씩 한다는 ‘분류작업의 전문인력 투입’(25.6%), 주 5일제 도입(22.4%)이 1~3위로 꼽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에선 적정 작업시간을 정하는 표준계약서 작성과 배송료 인상은 내년 상반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주 5일제와 분류인력 투입은 노사 협의로 도입하도록 했다. 현시점에서 강제할 수단이 없어 유도·권고에 그친 정책들이다. 정부가 택배회사에 1차 권고한 ‘심야배송 제한’은 실태조사에선 ‘거의 없다’는 답이 40~50%에 달했다. 정부의 정책 순위와 현장 체감도가 엇박자를 낸 사례이다.

올해 택배종사자 14명이 과로로 쓰러지면서 일부 배송료 인상과 배송지연을 감내하겠다는 시민 여론이 80%를 넘나든다. 더디고 미온적이었던 정부대책이 그 속도와 강도를 높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정부의 택배 대책은 2017년 11월에 처음 나왔다. 지난달 다시 내놓은 표준계약서 작성과 대형화주 리베이트(백마진)를 차단할 택배요금신고제는 그때도 핵심 대책으로 제시됐다가 노사협의 결렬과 입법 지체로 중단됐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듯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는 궁극적으로 최소 작업시간과 최저 배송료, 산재보험이 도입돼야 막을 수 있다. 여야가 백마디 말보다 우선 처리해야 할 게 있다. 표준계약서와 적정 배송료를 강제할 수 있는 ‘생활물류법’ 제정을 올 정기국회에서 매듭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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