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문화재보존 예산 확보부터

2000.12.01 18:53

〈정옥자·서울대 교수〉

일제시대에 우리 문화재는 대대적인 손상을 입었다. 수원에 있던 행궁이 헐려 경찰서와 초등학교 부지가 되었는가 하면 시흥행궁, 온양행궁도 모두 훼철되었다. 경복궁은 일부만 남기고 조선총독부가 깔고 앉았다. 창경궁의 전각도 대부분 헐리고 벚꽃이 만발하는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전락했다.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러한 문화재를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경복궁 복원작업은 마무리단계에 있고 수원행궁도 복원되고 있다. 강화도의 외규장각도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 복원사업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 회복과 관련이 있고 더 나아가 상처받은 민족 자부심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의 문화재를 약탈해 간지 1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반환문제가 양국간의 중요 현안이 되었다. 그러나 반환문제가 해결될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에 앞서 우리에게 더 큰 숙제는 남아 있는 문화재부터 제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풍납토성 문화유적지 지정문제로 현장을 답사하였다. 비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몰려나와 길을 막는 바람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못하고 차에 탄 채 그들의 항의와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진작에 문화재로 지정된 곳 외에 현재 발굴중으로 문화재 지정이 예정된 지역주민들의 사연은 한결같이 고생고생하며 마련한 집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서민들의 집 한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화재위원의 임무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가 나오는 곳은 어디든지 문화유적으로 지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이다. 실제 그 지역주민들도 다 같은 국민으로 문화재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화재 지정에 항의하는 것이었다.

풍납토성 안에 사는 이들이 반드시 그곳에 살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곳에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애착을 가질 사람도 없다. 1970년대만 하여도 풍납토성 안에 민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보상만 충분히 하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제때에 충분한 보상이 뒤따르지 못하는 문화재 지정에 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문화부 예산이 전체 예산의 1%가 되었다고 기삿거리가 된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충분한 보상이 어려우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 속사정을 알면서 서민들의 삶터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문화재위원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가에 좋은 일 한다고 서민들에게 악역을 하고 있는 것이 문화재위원들이다. 문화재위원들은 괴롭다. 문화재청 담당직원들의 고충은 더욱 크다 한다. 민원 때문에 업무가 마비되고 별별 흑색선전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국가보상이 미흡하여 일어나는 일이다. 조상의 얼이 담긴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재가 국민들의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야 함에도 원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는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다가 문화재가 나오면 신고는 고사하고 그냥 덮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일제가 우리의 문화유산을 훼철한 것도 억울한데 우리의 손으로 문화유산을 방치 내지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국가는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리 하나 놓으려고, 건물 하나 지으려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기 전에 문화재 보존을 위한 예산부터 세워야 한다. 다리 하나 없어도 살 수 있고 건물 하나 없어도 산다. 다만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다리나 건물은 나중에 놓고 지어도 되지만 한번 훼손된 문화유적이나 문화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문화재보존을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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