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빅 브라더’ 욕망

2015.12.08 21:01 입력 2015.12.08 21:13 수정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파리 등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국정원은 온 나라를 테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여준다며 테러방지 관련 법안의 통과에 합의했다고 한다. 테러를 막는 데 필요하다고 하면 안되는 게 없는 듯한 분위기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그중의 하나이다(국회에서 논의되는 사이버테러 관련 법안은 4건인데 이를 사이버테러방지법이라고 통칭한다).

우선 질문을 하나 던져 본다. 만약 당신이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와 내용을 국정원이 다 감시할 수 있다면, 동의할 수 있는가? 법안은 해킹·바이러스 유포 등 모든 종류의 정보통신망 침해행위, 정보의 절취·훼손·왜곡 전파 등을 ‘사이버테러’라 정의하고 있다. 흔히 테러라고 하면 정치적 목적에서 행해지는 공격행위를 말하지만, 사이버테러의 개념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 여부와 상관없이, 인터넷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보안사고가 모두 ‘테러’로 규정되는 셈이다.

[정동칼럼] 국정원의 ‘빅 브라더’ 욕망

그러니까 사이버테러방지법은 테러 방지의 미명하에 국정원에 사이버상의 모든 정보를 감시하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은 사이버안전센터를 설치해 민·관 할 것 없이 사이버 보안사고에 대한 조사권한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선제적 예방 명목으로 사이버 위협정보의 수집·분석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이 사이버테러와 관련된 정보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국정원이 사실상 사이버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사이버테러의 선제적 예방 명목으로 그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니 법원의 영장발부와 같은 법치주의적 통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국정원은 민간의 정보통신망에 무차별적으로 접근하고 제한없이 정보를 수집할 권한을 갖는다. 국정원이 사이버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감시자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법안은 국정원에 정보통신망의 안전에 관한 책임을 부여한다. 따라서 국정원은 산하의 보안관제센터를 통해 공공 정보통신망뿐만 아니라 민간의 정보통신망에 대해서도 사이버보안에 관한 취약 정보를 수집·분석할 수 있다. 국정원은 현재 각종 보안 솔루션에 대한 인증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보안 솔루션의 기능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이버보안에 관한 모든 정보가 국정원에 집중되는데, 국정원이 그 기술적 정보를 은밀하게 이용하더라도 그 권한남용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더 나아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정원은 보안관제 솔루션의 표준을 정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실상 국정원이 인터넷상의 모든 서비스에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back-door) 권한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의 ‘왜곡 전파’까지 사이버테러 개념에 포함시켰으니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의 모든 게시글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과 감시가 가능해진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시민들의 말과 글을 감시했던 긴급조치 9호가 사이버 세상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국정원이 사이버상의 모든 정보에 무차별적으로 접근해 감시할 권한과 더불어 ‘사이버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되는 꼴이니 이보다 더 끔찍한 감시국가가 있을까 싶다.

우리나라에 사이버테러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재 국정원은 공공 정보통신망에 대한 보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정보통신망법이나 정보통신기반보호법 등에서 사이버 침해행위에 대한 대응조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현재의 대응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개선을 논의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선 그런 증거는 없다.

우리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민간인 사찰사건 등 국정원이 권한을 남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국정원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불법적인 국내 정치개입과 사찰을 일삼고 있지만, 그 권한남용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상황 아니던가.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와 국회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제정해 국정원에 사실상 제한없는 사이버 감시자의 권한을 부여하려 한다.

다시 앞에서 제기한 질문. 여러분은 그럼에도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제정에 동의하는가. 나는 절대 동의 못한다. 그 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는 ‘빅 브러더’ 감시자의 탄생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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