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통합론 대 출구통합론

2015.12.10 20:37 입력 2015.12.10 20:51 수정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찢어져서 각기 다른 계파 간에 으르렁대고, 야당은 찢어진 정도로 따지면 여당의 몇 곱절은 되어 보인다. 범야권으로까지 넓히면 더 사분오열되어 있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으로 갈라져서 뭐 하나 제대로 쉽게 통과되질 않고, 정부에 분노하는 국민과 청와대의 사이도 완전히 찢어져서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지역감정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비유를 들면서 또 찢어져 있고, 산업현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실업자로 찢어져 있다.

[정동칼럼]입구통합론 대 출구통합론

로스쿨 옹호론자와 사법고시 옹호론자가 찢어져 있고, 노년층과 젊은층의 거리도 멀어지기만 한다. 소위 보수와 진보도 사사건건 부딪친다. 뉴스를 보면 내용은 온통 찢어진 이야기뿐이다. 찢어진 공간 사이는 갈등과 반목과 기만과 찍어누름이 채우고 있다. 중국은 발 빠르게 추격해 오고 있고, 다른 선진국은 저 멀리 도망가는 것 같은데, 그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는 우리는 구한말 상황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진단을 하는 논객들도 있다.

이런 분열과 찢어짐, 문제는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찢어짐의 문제는 모든 다원주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 경험하는 것들이고, 찢어지고 갈라진 사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통합해 내고 치유하느냐의 방법론을 찾는 일이다. 통합이 필요한 이유는 통합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싸우고 반목하는 것 자체도 보기 싫지만, 통합이 안 되면 그만큼 쓸데없는 힘과 비용을 낭비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통합된 사회는 비교적 쉽게 일을 시작하고 일을 끝낼 수 있는데 찢어지고 갈라진 사회는 합의를 보는 데에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합의를 본 후에도 또 찢어져서 시급한 일의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즉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의 경쟁상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척척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가나 사회가 적이나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을 때 사분오열되어 있으면 분열의 공간으로 적이 침투해 들어오고, 필요한 대응을 신속히 해내지 못해 국가와 사회가 백척간두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통합을 이루는 것은 국가나 사회에 경쟁력과 힘을 보태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어떻게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훈수들이 나오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른바 입구통합론으로 처음부터 국민이나 사회는 통합되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일하겠다는 정부나 지도자의 발목을 자꾸 잡지만 말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견해인데, 그러다 보니 국민통합을 위해 국가 지도자의 권위를 강조하고, 반대세력은 제압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견해는 이른바 출구통합론이다. 출구통합론은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존중하고 그 이해관계의 조정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하되,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도출된 결론에 대해서는 모두 합의하고 따라와야 한다는 견해이다. 즉 통합은 시작부터인 입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단계인 출구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입구통합론에 비하여 과정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어서 당장 일의 시작과 끝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고 한심할 수 있다.

하지만 입구통합론의 위험성은 민주주의적 절차가 무시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고, 권력을 통하여 반대세력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인권 유린과 독재의 가능성마저 존재하여 장기적으로는 사회를 더욱 큰 혼란으로 몰고 간다. 반면 출구통합론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진다는 전제 하에서, 장기적으로는 보다 건강한 사회통합을 가져올 수 있고, 정착된다면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과정 역시 비교적 효율적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입구통합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그리고 출구통합론의 역시 가장 취약한 부분만을 노정하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정답은 입구통합론과 출구통합론의 중간 지대 어디쯤 위치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이해 당사자들은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는 그 합의를 따르는 출구통합론을 정착시키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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