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리고, 끌어올리자

2017.01.12 21:10 입력 2017.01.12 21:24 수정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정동칼럼]끌어내리고, 끌어올리자

지난 1월9일은 304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참사의 원인, 과정, 결과가 지닌 이해 불가의 무능과 사악함에 대한 분노는 인간은 본시 망각의 동물이라는 표현이 끼어들 자리조차 없애야 하지만, 맹목으로 확산되던 세월호 피로감과 못된 버릇을 못 버린 종북론의 마녀사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변함없는 후안무치의 조직적 방해로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 밑바닥에 박힌 세월호는 우리들 심장 밑바닥에 박힌 가시다. 맨밥 꿀꺽 삼키듯 덮어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시의 존재는 더 분명해지고, 고통은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슬퍼하며 비루한 공범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바다 깊이 침몰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버릴 수 있는 일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바다 밑의 세월호는 꿈틀거리고 있었고, 진실을 향한 핏빛 절규는 나라를 통째로 농단하던 거대한 범죄 집단의 실체를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야 말았다.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인양하지 않으려는 것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들은 세월호만 침몰시킨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악한 세력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죽인 자’들을 반드시 벌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있다.

진실규명과 심판의 역할은 바다에서 땅 위로 올라왔고, 촛불이 이어받았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가짜들을 태워버리기 위해 타올랐다. 가해자들의 폭력과는 정반대로 평화롭게 진행된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을 수렁에서 건져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가해자들은 예상대로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전히 모르쇠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넘쳐나고, 누구 하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혼자만 살겠다고 뛰쳐나온 선장처럼 그 배후에서 거대한 악을 만든 폭력집단은 만천하에 드러난 숱한 증거들마저도 깡그리 부인한다. 물속에서 자기만 살아나온 게 미안하다고 오열하던 생존 학생처럼, 슬픔과 고통은 언제나처럼 약자의 몫이고 피해자의 짐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이미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한 줌 사적 집단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국가는 대통령의 직무정지에도 불구하고 관성처럼 국민들을 향해 움직이지 말라고 시대를 착각하며 헛짓을 반복한다. 세월호 침몰이 시작된 이후 첫마디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라는 생존자의 처절한 증언처럼 살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했던 사적 국가를 거부하고 탈출해야 한다. 평화로운 혁명으로 폭력과 불공정의 패악권력을 몰아내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끌어내려야 할 것과 끌어올려야 할 것이 확실해졌다. 끌어내려야 할 것은 앞서 말한 가해자 집단과 함께 그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하며 누려온 적폐들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세월호이며, 또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으며, 악이 정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국내정치도 외교도 엉망진창이지만 이는 도약을 위한 치열한 재정비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세계정세의 불확실성과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동네북의 사면초가에 빠졌지만 국민들이 인양을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에어포켓이 생기고, 골든타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아무도 쉽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리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자. 냉소와 순환 반복을 철칙으로 주장하는 자들의 숨은 동기와 배후를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그릇된 정치를 향해 분노를 품되 그것이 정치를 버리고 외면하는 이유가 아니라, 정치를 회복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의 과실을 권력교체로만 한정 지으려는 세력들도 아니 된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과 ‘샌더스 현상’을 차단하는 또 다른 기득권의 모습을 보였기에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즘 국가주의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가 극우포퓰리즘의 헬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헬게이트에서 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면, ‘광화문의 기적’은 내일의 우리를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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