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은 위험해! 그럼 실내는?

2018.02.11 21:06 입력 2018.02.11 21:08 수정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달라졌다. 아침대화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오늘은 몇이야?” 하는 질문이다. 휴대폰 앱을 켜고 대기질지수(AQI)를 확인한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겨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니까. 올 1월 중순엔 수치가 연일 200을 넘나들었다. 상황이 심각하다.

[정동칼럼]집 밖은 위험해! 그럼 실내는?

잠시 수치가 낮아진 날이면 이때를 놓칠세라 청소를 하고 집안공기를 환기시킨다. ‘이런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 때론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 ‘될 대로 되겠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동시에 스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덤덤하게 무시하고 살기엔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치명적이다.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더 위험한 법이다. 몇 해 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이런 결정을 하려면 해당물질의 인체 발암 인과성이 세심히 규명되어야 하는데 몇 가지 대규모 역학조사가 결정적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대기오염은 건강에 확실한 위협이라고 공식 천명된 셈이다.

실외 대기가 나빠질수록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실내로 향한다. 최근 실내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우리 병원 자원봉사단 멤버들과 함께 다녀온 예술의전당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 전시에서였다. 관람 후 대화를 나누는데 의외의 작품에 호평이 쏟아졌다. 지라드의 대표작인 그 유명한 ‘인터내셔널 러브하트’도 아니고 ‘목각인형’도 아닌, 뜻밖에도 ‘밀러하우스’라는 집 실내를 재현한 빨간 소파였다.

전시장을 구경하는 도중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곳에 앉아 지라드가 구현한 실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주 보이는 벽 전면에는 모니터를 통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정원의 풍경사진이 천천히 흘러간다. 마치 거실에 앉아 뜰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나무에 눈이 쌓였다가 녹아내리고 봄꽃이 피어 바람에 흩날리고 이내 녹음이 우거진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이렇게 쾌적하고 아늑한 실내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간절한가. 실내가 삶의 질에 미치는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이다. 지라드는 실내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발견하고 구현한 디자이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일전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미세먼지 정책토론회가 있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 실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학자,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시민활동가 등 이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패널토의를 진행하였다. 여러 의견과 제안이 오갔고 낯선 기술용어와 법률용어들도 등장했다. 그러다 말미에 객석에서 누군가 “그럼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좋은 해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고 마이크를 쥔 전문가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솔직히 현재로선 마스크가 답입니다.” 결론이 마스크라니….

영화 <아바타> 생각이 났다. 바야흐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어버린 미래, 인류는 자원이 풍부한 행성 판도라를 발견하지만 그곳의 대기는 인간에겐 독성을 지녔기 때문에 특수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서는 밖에 나다닐 수가 없다. 지금 우리들도 모양과 기능만 다를 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만약 지구의 대기가 더 나빠진다면 우리도 그런 특수마스크를 외출할 때마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실외 공기는 마스크로 대처한다고 치고 그럼 실내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스타트업에서 개최한 실내 공기질에 관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내내 활기와 즐거움이 감돌았다. 첫 발표자는 세계보건기구, 미국환경보호국(EPA), 한국환경부 각각의 대기질 지표기준을 비교해가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몇 가지 측정실험결과도 공유했는데 전철역 내부 공기질 수치가 생각보다 좋게 나온 것은 다소 반전이었다. 다음 발표자인 어느 블로거는 ‘미세먼지 속 우리 가족 생존기’라는 주제로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요.” 인터넷에서 덕트와 부직포를 구매하여 스스로 공기정화시스템을 만든 이야기도 나왔다.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인 완성품 사진을 뿌듯해하며 보여주는 대목에선 다들 웃음이 빵 터졌다. 자신의 방만큼은 캘리포니아 공기 수준으로 깨끗하게 다스리고 있다고 자부했던 블로거는 행사 후에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기만발이었다.

이토록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이들을 보고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유난스러움이 어쩐지 미래를 바꾸는 변화의 동력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안전하고 건강한 실내를 위한 개인들의 열정은 의미 있다. 지금도 유의하게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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