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남긴 ‘열망 잇기’의 무거움

2019.07.25 20:25 입력 2019.07.25 20:37 수정

1년 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도열해 있던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고인이 헌신했던 국회 건물을 방문하는 운구행렬을 맞이하며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그에게 마지막 예를 다했다. 신산한 삶의 흔적을 얼굴에 품은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들은 그 어떤 조객 못지않게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어느 정치인, 유명인사의 장례식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빈소에 끝없이 이어졌던 시민들의 조문도 그러했지만, 슬픔에 잠긴 국회 미화원 노동자들의 모습이야말로 노회찬 정치 이력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정동칼럼]노회찬이 남긴 ‘열망 잇기’의 무거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공동대표직을 수락하는 자리에서 그는, 새벽 4시에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하여 신도림, 구로시장에서 벌써 버스를 가득 채우는 승객들을 언급했다. 그 새벽 첫차의 승객들은 강남의 빌딩들을 청소하는 미화원 노동자들로, 대부분 50~60대 여성들이다. 그는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말하며, 이름이 있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존재하되 존재를 가시화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외쳤다. 그가 떠난 후에 더욱 유명해진, 이른바 ‘6411번 버스 연설’이다.

실제로 그는 국회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적극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국회 사무처에서 공간부족을 이유로 미화원 노조사무실과 휴게실을 비워달라고 했을 때 자기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자고 했다거나 여성의날에 그들에게 일일이 꽃을 선물했다는 일화는 그가 그들을 언제나 동료로 여겼다는 구체적 사례로 회자된다.

그는 그렇게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다짐했었고 그것을 국회 안팎에서 실천했다. 물론 그 투명인간들이 여성 미화원들만은 아니고 그가 말했듯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 온 수많은” 노동자들 전부였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너무나 비가시화되기 쉬운 저소득층 여성들의 노동을 노동자 현실의 대표적 사례로 표면화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여성 노동자는 상징이나 기호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는 진보진영의 고질적 맹점으로 지적받곤 하는 젠더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남긴 여러 기록과 저술이 증명하듯 여성을 노동, 운동,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였으며 여성의 활동을 부각하기 위해 진력하고 고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 관한 특별법안, 성적 지향과 정체성에 관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 등 성소수자의 평등한 삶을 위해 노력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에 성소수자 인권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반’(동성애자)은 아니지만 ‘일반’(이성애자)의 소수자 배타성을 비판하고 이반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삼반’이라 칭했다.

사람의 귀함과 천함을 너무나 손쉽게 가르는 정서가 점점 모질어지는 세상이다. 여성들과 노동자들, 사회의 구석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수많은 소수자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철학, ‘평등’을 진보의 최상 가치로 믿고 실천하는 데 몸 바쳤던, 든든했던 동지를 잃었다. 정의당원이 아닌 시민들도 그의 예리한 정치적 통찰력과 운동가적 헌신, 기개를 진심으로 아까워한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인들은 곱씹어보아야 한다.

그가 떠났으니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한다”던 정의당 이정미 전 대표의 추도사는 상실의 아픔을 변화의 추동력으로 전환하자는 바람이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상실한 대상을 내면화하여 그 대상과 동일시하는 것을 멜랑콜리, 즉 우울의 기제라고 설명한다. 떠난 이의 정신을 내면화하고 그에 동일시하는 것 역시 일종의 우울로 볼 수 있다면,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정치적 우울은 지속되고 확산되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에 대한 지향이 일종의 정치적 우울을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또한 진보세력의 현실적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사정부 이후 공고해지기만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넘어서고자 열망했던 그의 제7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잇는 그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어 제시하고 효과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시에서 썼듯, 혼탁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상투어구가 진실이 아니라는 비정한 아이러니를 깨닫고 견디는 데 있다. 상실은 돌이킬 수 없고 뒤늦은 말은 소용이 적지만, 그의 1주기를 보내며 이 애사(哀詞)를 뒤늦게나마 고 노회찬 의원의 영전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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