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새 韓銀총재가 해야할 일

2002.04.01 18:56

독일에서는 동·서독 통일의 최대 견인차로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아닌,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연방은행)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분데스방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화의 가치를 효율적으로 방어함으로써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뤄낸 것이 곧 통일의 초석이 됐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국제금융계에서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장성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는 평가와 함께 ‘거품 붕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처럼 한 나라 경제의 ‘지형지물’이 중앙은행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그동안 국민들의 높은 존경을 받을 만큼 제 역량을 발휘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8년 은행감독권이 금융감독원으로 옮겨지고 인사 적체가 해소되지 못하면서 역동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용한 절간 분위기가 난다”며 ‘한은사(韓銀寺)’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 역시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콜금리 결정을 앞두고 재경부 장관의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 박승(朴昇) 신임 총재에게는 한은의 위상을 높여야 할 책임이 맡겨져 있다. 그것은 경제장관간담회에 참석하지 않거나 정책 대안을 적극 제시하는 총재의 ‘개인 플레이’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박총재 자신이 취임식에서 다짐한 것처럼 외국 중앙은행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조직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다.

더욱이 올해 경제는 대통령 선거와 경기과열 시비, 거품 논란 등으로 겹겹이 안개속에 싸여 있다. 한은이 시장의 불신을 받곤하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앞길을 바르게 보여주는 ‘고독한 등대지기’가 돼주길 기대해본다.

<경제부 권석천기자 milad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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