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새 미대통령과 한반도

2000.11.06 18:58

〈조성환·논설위원〉

고스톱이나 포커게임이나 승자가 되기 위한 기본조건은 동일하다고 본다. 넉넉한 밑천과 두둑한 배짱, 그리고 상대방의 패를 읽는 노련함을 겸비했다면 백전불패다. 게임의 법칙은 도박장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외교란 이름의 그럴 듯한 수사로 포장된 나라와 나라 사이의 ‘도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나라의 대외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대통령은 속된 말로 ‘큰 도박사’이다. 주요국 대통령의 교체에 각국이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한국시간으로 오늘밤이 지나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다. 미 국내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볼 때도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자국의 국익과 관련된 게임의 가장 중요한 상대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최강을 자랑하는 나라의 도박사가 어떻게 대외관계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자국의 이해와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로서도 당장 새 미국 대통령과 맺어질 한·미관계와 북·미관계, 또 이들이 가져올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세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누가 당선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지금은 남북화해와 협력을 거쳐 통일에 이르는 결정적 시기란 점에서 그렇다. 가까이는 일본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를 대상으로 벌어질 한·미·북 삼각게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미국 도박사인 부시 및 고어의 기질을 살펴봐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선거 운동 10개월 동안 양자간에 세계속 미국의 역할에 대해 이렇다 할 논쟁이 없었다. 한반도 관련사안은 주한미군 계속주둔과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추진문제 정도였고 근본적 시각 차이도 없었다. 양측 모두 실속없이 외교문제를 잘못 건드렸을 때의 위험부담을 고려, 싸움을 피했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넉넉한 밑천과 상대방 패에 대한 많은 정보로 유리한 입장이겠지만 정확한 패읽기나 두둑한 배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 대통령과 패를 상의하는 입장이라 위험부담은 적겠지만 기본패를 까놓은 상태라 향후 한·미, 남북관계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미·북 삼각게임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또다른 카드이다. 그는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을 미국에 전격 파견,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을 이끌어냈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가능성을 열어놨다. ‘50년 철천지 원쑤의 나라’에 자신의 심복을 보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한꺼번에 얻어내려 하는 것이다.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수출, 핵투명성, 테러지원 문제 중 핵심은 중·장거리 미사일이다. 한마디로 미사일 하나로 미국과 큰 도박을 하는 꼴이다.

밑천은 거덜난 상태이지만 두둑한 배짱과 정확한 상대패 읽기로 띄운 최후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초미의 관심사다. 새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지금까지의 북·미관계를 뒤로 돌리기는 어렵다. 고어가 승리할 경우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쉬워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한반도 지각변화를 북·미가 주도할 가능성이 커지고 일본은 북·일수교 성사에 더욱 초조해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로서도 마냥 반기기만은 찜찜해진다.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북한의 외교도박술은 우리와 크게 비교된다. 스콧 스나이더 박사(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는 이를 ‘위기’ 및 ‘벼랑끝’전술, ‘지렛대 만들기’의 3대원칙으로 파악했지만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대화일꾼들의 자세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분석된다. 그들은 강대국이라고 굽신거리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막대한 군사·경제지원을 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그들이 사대주의로 비쳐질 비굴한 협상을 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미·일·중·러 등 강대국과 조그마한 마찰이 있어도 이를 피하거나 알아서 기는 데 급급한 우리와는 한참 다르다. 힘이 약해도 사리가 분명하고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악바리한테는 당해낼 자가 없다. 큰 도박사의 밑천을 챙겨줘야 하는 새끼 도박사가 폭탄주 먹고 헛소리해서야 상대가 어떻게 보겠는가. 한반도 새 역사를 우리가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차제에 함량미달에 자기보신에만 급급한 아마추어 도박사들은 갈아버리자. 대외협상 자세·기술을 혁명적으로 개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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