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한라산 케이블카

2000.11.13 18:58

〈허영섭·논설위원〉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이던 지난 1968년의 일이었다. 제주도 초도순시에 나섰던 박대통령이 관광진흥 차원에서 지시를 내렸으며 곧바로 사업타당성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뒤로 흐지부지된 채 30여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최근들어 이 문제가 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이번에는 자연환경 보호가 더 중요한 목적이라니 그만큼 한라산이 피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전체가 푸석푸석하고 점착력이 약한 화산흙으로 되어 있어 등산객들에 의한 답압(踏壓)만으로도 토사가 유실되어 식생이 파괴될 정도라 한다. 기껏 연간 2만여명 안팎이던 탐방객이 그동안 50만~6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앞으로 10년 안에 1백만명을 넘어선다는 추산이니 자연훼손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뻔하다.

내년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주도를 방문하더라도 한라산에서 얼마나 감흥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어쩌면 “한라산 일출을 보고 싶다”던 그의 기대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사전답사차 이곳을 찾았던 김용순 비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일행도 영실 중턱까지 밖에는 오르지 못했다. 일정이 촉박했던 탓이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벌겋게 드러난 궁색한 모습을 보여 실망을 안겨 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곳곳에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를 비벼넣어 철탑을 박는다면 어차피 자연환경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관광진흥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천혜의 자연환경을 당장의 돈벌이를 위해 망치려는 것이냐는 비난도 들려온다.

그렇지 않더라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일단 사업을 벌여놓고는 슬금슬금 환경을 어지럽히는 처사를 서슴지 않았던 숱한 전례로 미뤄 우려를 더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시작된 경의선 복원사업에서도 DMZ의 자연환경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듯이 느껴진다. 새만금이나 경인운하 사업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진척을 보지 못하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막바지 단계에서 계획이 무산된 동감댐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 해도 주민들의 피해보상 문제가 제기되는 등 후유증은 여전하다.

그러나 서로의 기본 취지가 자연보호에 있는 만큼 결론을 내리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라산을 백두산이나 설악산처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하려는 움직임도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일이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가꿔 ‘아시아의 제네바’로 만들자는 주장도 일단 한라산을 살려 놓은 다음의 얘기다. 제주도민들이 한라산에 ‘흙 한줌 나르기’ 운동을 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유엔개발계획(UNDP)이 관광객 증가로 인한 백두산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오히려 케이블카 설치를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고로 삼을 만하다. 2020년까지 추진되는 이 계획에는 리조트, 스키장, 골프장도 들어 있는데 관광객들이 이처럼 제한된 지역만 이용하도록 유도한다면 전체적인 환경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는 판단인 것같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금강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유보하고 있는 북한 당국도 백두산에는 향도봉~천지 구간에 궤도열차 및 케이블카를 설치해 운영중이다.

한편으로는 몽블랑에서처럼 케이블카 자체가 훌륭한 관광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가 케이블카 용역을 의뢰한 호주 스카이레일(Skyrail)의 경우도 그렇다. 호주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퀸즐랜드 우림지역에 곤돌라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생태관광 활성화에 적잖게 기여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 곤돌라는 7.5㎞에 이르는데도 별도의 작업로를 내지 않고 헬리콥터만으로 설치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자연훼손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는게 제주도 당국의 설명이다.

결론은 제주도민들이 내리겠지만 한라산은 도민들만의 소유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국민 전체의 제주도이며 한라산이다. 나아가 세계 속의 제주도가 되도록 두루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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