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앞으로 나란히’미래 없다

2000.11.27 19:14

여권의 당정쇄신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당은 지리멸렬이고 민심은 떠나고 있으니 전열정비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해보자. 그러려면 허세대표나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을 전면에서 후퇴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인적 개편만으로 여권이 다시 활기를 찾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을까. 경험으로 볼 때 결코 아니다. 역대 정권이 수없이 써먹었던 그 방법은 각성제같은 것이어서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본 적도 있지만 대부분 권력내부의 소모전으로 끝났다. 사고의 전환이나 의사결정과 집행 시스템의 개혁을 동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인물 교체는 교체의 악순환만 낳았다.

최근 민주당의 체제 개편론 역시 그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무도 ‘불충(不忠)’으로 찍힐까봐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쇄신론은 차기 대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당의 중심축을 옮기자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당이 재집권하고,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살아 남는 ‘계속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게 명분이다. 그러나 그같은 주장이나 절박성은 인정되나 너무 단선적 접근인 데다 현실감마저 떨어진다. 김대통령의 권력을 보강해도 모자라는 판에 중심축의 이전은 이를 허무는 도전이라는 역공에 대해 전혀 대항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을 집중시키려 하지 분산하려 하지 않는 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늘 “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는 집권후 자신의 말과는 거꾸로 민자당을 ‘김영삼당’으로 개조시키는 데 진력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96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의 실패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4·13총선은 그것과 거의 닮은꼴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초반 평생 한(恨)인 지역정당을 극복하고자 소위 동진정책을 추진했다. 일부 열혈 참모들의 건의는 행정력과 집권당이 가진 권한을 이용한다면 영남에서도 얼마든지 민주당 기반이 생길 것이란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영남 민심은 이를 침범으로 간주했다. 지도력의 확장을 설득력이 아니라 힘의 규합에서 찾으려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진정책은 마치 달리는 버스안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자신이 달리고 있다고 착각한 결과가 되었다.

또 하나의 허위의식은 총재의 권한을 강화하면서도 당을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의 차세대 지도자들을 양성한다며 최고위원을 일부는 경선시키고 일부는 임명했다. 게다가 임명직 중에서 대표를 지명하는 이중적 지도체제를 만들었다. 거기다 최측근을 상임고문으로 당에 심어 놓았다. 경선 최고위원이건 임명직이건 모두를 ‘꼬마’로 만든 것이다.

무늬만 민주정당화 작업이었지 속은 여전히 사당(私黨)적 행태를 걷어내지 못했다. 모두들 생각보다는 힘이 권력의 결정변수인 정치풍토에서 성장하다보니 머리는 힘이 막강한 지도자의 주파수에 맞춰놓고, 남들보다 지도자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거나 편을 가르거나, 사람 끌어모으기에만 골몰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당정쇄신론은 그래서 언발에 오줌누기거나, 남의 다리 긁는 셈이다. 모두가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지도자 뒤에 한줄로 서서 행진하고 있으면서도 2번 3번의 순위를 바꾸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왜 이런 난관에 봉착했는지에 대한 토론이 지도자에 대한 도전이나 불충이라고 생각하는 한 당직개편을 백번해봤자 민주당은 미래가 없다. 옷로비·정현준사건 처리는 납득할 만한 것이었나. 양극단인 대처리즘과 포퓰리즘 둘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일리는 없는가. 공기업 구조조정에 노조의 합의를 전제한 것이 합리적인가 등등 자아비판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또 검찰은 앞으로도 계속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가에서부터 소수 여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정 야당과의 제휴가 먼저인가, 아니면 설득이 먼저인가 등 진지한 내부 토론은 왜 벌어지지 않는가. 그런 토론이 있을 때 차기 정권에 대한 전망이 나오는 것이지 ‘앞으로 나란히’ 속에선 희망이 없다.

〈김충일 논설위원/ci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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