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반란인가

2012.12.24 20:50 입력 2012.12.24 23:03 수정
김봉선 논설위원

투병 중인 50대 중반의 한 지인은 지난 19일 오후 투표장을 찾았다. 조직검사를 한 끝에 악화된 징후는 없어 레이저 시술만 받고 서둔 길이었다. 또 다른 50대 초반의 한 인사는 종일 카카오톡을 통해 쏟아지는 고교 동창들의 채근에 시달리다 투표소에 나갔다. 그는 “투표 안 하면 ‘왕따’가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강남구의 투표율이 서울에서 가장 낮다는 뉴스를 보고 오후 5시쯤 투표했다는 50대 초반의 치과의사도 있었다. 극성스러운 줄이 이어지면서 50대의 투표율이 89.9%(방송3사 출구조사 추정치)에 달했다. ‘관 속에 들어간 사람 빼곤 다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50대 중 62.5%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했다는 게 출구조사 집계다. 50대는 인구 구성비에서 2002년 12.9%를 차지했으나 올 대선에서는 19.2%로 늘었다. 투표율과 인구 구성비, 지지율 등을 감안하면 박 당선인은 50대에서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비해 250만표를 더 얻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50대는 10년 전인 16대 대선에서도 83.7%의 투표율을 보일 정도로 참여도가 높다. 그렇다 해도 투표율이 90%에 이르고, 62.5%가 한 사람에게 지지를 보냈다면 예사로 봐 넘길 일은 아니다. 이들 중 다수는 10년 전 ‘바보 노무현’에 눈물 흘린 이들이 아닌가. 보수 진영은 보수의 확장이라고 반색하고, 진보 진영은 50대의 반란이라며 허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향의 눈]50대의 반란인가

1955년에서 1963년생인 50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불린다.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도 부모의 교육열로 신분 이동이 활발했고, 성장의 과실도 즐겼다. 일부는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화이트칼라로 ‘넥타이 부대’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금은 대학생이나 결혼할 자녀가 있고, 은퇴했거나 은퇴가 다가오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하우스푸어, 렌트푸어와 같은 말들이 가슴에 들어와 박히는 층이다. 경제적 불안감이 그들을 ‘더 오른쪽’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들의 보수화를 설명하는 주요 준거들이다. 이쯤이면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을 이해하는 모든 길은 50대의 선택으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 보수든, 진보든 50대의 선택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세대 문제에 천착해온 시사평론가 김종배는 박 당선인의 승인이 50대의 반란에 있다는 해석을 두고 “방송 출구조사 추정치 외에는 그 어떤 근거도 없다”고 단언했다. 대개 여성은 전업주부이고, 남성은 자영업자로 신분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여서 50대가 성별을 떠나 몰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20~40대는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를 비롯한 주변과의 소통을 통해 일방적 여론을 거르는 ‘여과 장치’를 갖지만,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되는 50대는 미디어 의존성이 크기 때문이다. 종편은 물론이고 조·중·동이나 KBS, MBC 등 대부분 매체의 극심한 보수 편향성이 그런 50대의 보수화를 가속시켰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분석의 틀이 맞아떨어질 확률이 높긴 하나 출구조사에만 의존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무리이고, 위험하다는 게 김종배의 지적이다.

당장 진보 세력의 무능은 물론이고 박 당선인이 보완해나가야 할 약점까지 가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은 박 당선인의 안정감으로, 박 당선인의 오락가락하는 경제민주화는 현실성 있는 경제개혁으로, 끝나지 않은 과거사 논란은 정치공세로 둔갑한다. 너나없이 대선의 화두라던 ‘안철수 현상’은 오간 데 없고, 지역구도는 완화된 것으로 평가받으며, 박 당선인의 승리가 아닌 민주당의 패배라는 지적은 설 자리를 잃는다. 박 당선인의 승리는 신이 점지한 일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다. 세대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은 “2010년 지방선거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번 대선을 야당 후보 지지 측면에서 비교하면 지지폭이 가장 떨어진 것은 40대”라며 “야권의 패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없이 50대의 반란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50대에게 주홍글씨를 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50대의 반란이 박 당선인의 승인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대선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 연령층의 투표성향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전체 유권자의 민심을 왜곡하거나 굴절시킬 여지가 크다. 그 중에서도 전례가 없을 만큼 뜨거웠던 2030의 투표 열기를 포함한 새로운 선거문화를 조명하지 못하는 건 큰 손실이다. 한 대학생이 19일 밤 지인에게 보냈다는 문자메시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투표는 마쳤으나 투표한 보람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5년 동안이 걱정되고 막막하기는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기에 불평하고 화 내긴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공부가 정말 안되는 밤이네요.” 지금 시선을 줘야 할 곳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51.55% 대신 패배의 상실감을 겪고 있는 48.02% 아닐까. 다들 성급하고,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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